▲ 민병식 논설위원

황순원(1915-2000) 선생의 대표 단편 소설인 학은 6 25 전쟁 시기의 삼팔 접경의 북쪽 마을을 배경으로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인간애의 실현이라는 주제를 살린 작품이다. 선생은 1931년 16세의 나이로 문학지 '동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나 소설에 관심을 갖고 많은 소설을 썼고, 일제 강점기에 황순원은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으로 낙향, 은둔생활을 하며 글을 썼으며, 황순원의 글을 접한 이광수가 그의 재능을 칭찬하면서 일본어로 작품을 쓰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한글로 글을 썼다고 한다.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한 마을에서 단짝동무로 지냈던 성삼이와 덕재는 6. 25가 나면서 이념을 달리하는 적대 관계로 만나게 된다. 치안 대원이 된 성삼이는 덕재가 체포되어 온 것을 보고는 청단까지의 호송을 자청하여 덕재를 데리고 나선다. 호송 도중, 성삼이는 유년 시절 때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우던 생각과 혹부리 할아버지네 밤을 서리하다가 들켜 혼이 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내적 갈등을 느낀다. 농민 동맹 부위원장까지 지낸 덕재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품기도 했으나, 대화를 하는 사이에 점차 적대감이 누그러지면서 덕재의 몰 이념성을 알게 된다.

즉, 덕재는 스스로 공산주의 이념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빈농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용당했을 뿐으로 사실은 땅밖에 모르는 순박한 농민이었던 것이다. 덕재는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있었고, 또 농사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착으로 인해 피난하지 않고 마을에 남게 된 사실을 이야기한다. 성삼이는 자신이 피난 가던 때를 회상하면서 농사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피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덕재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어느덧 덕재에 대한 증오심이 점차 우정으로 바뀌면서 고갯마루를 넘는다. 성삼이는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전처럼 살고 있는 학 떼를 발견하고는 옛일을 회상하게 된다. 어린 시절, 학을 잡아 얽어매 놓고 괴롭히다가 사냥꾼이 학을 잡으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놀라서 학 발목의 올가미를 풀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에는 제대로 날지 못하다가 자유로워진 학이 푸른 하늘로 날아갔던 일에 대한 추억이 그것이다. 성삼이는 학 사냥을 하자면서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준다.덕재는 처음에는 성삼이가 자기를 쏘아 죽이려고 이러나 보다고 멈칫거렸으나, 어이, 왜 맹추같이 게 섰는 게야? 하는 성삼이의 재촉에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사이로 도망친다는 것이 소설 전체의 줄거리이다.

학은 1953년 신천지에 발표된 소설이다. 학은 구성과 기법면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화와 깨끗함을 상징하는 학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대립되는 이념을 상쇄시키고 화해하는 기능을 한다. 중간중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현재의 상활을 이해하도록 매칭한다. 이념과 사상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두 친구는 어렸을 때 함께 했던 기억 속의 학으로 관계를 회복하는데 여기에서 작가는 당시 국토 분단과 전쟁,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동질성 회복과 인간애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현대 사회를 살면서 인간애와 휴머니즘을 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세상이 점점 메마르고 험악해져서 일 것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세상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이다. 국민을 위한 것인지. 자신 들의 정권을 잡기 위해 그런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나라을 이끌고 가야할 지도층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있고 부도덕하면서 국민들에게는 깨끗함을 강요한다. 진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인간애와 휴머니즘은 윗물의 자기반성과 양심의 회복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국민은 지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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