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콧 피츠제럴드의 '밤은 부드러워'에서 보는 잃어버릴 것이 없는 지금의 세대

민병식논설위원l승인2021.11.22l수정2021.11.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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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병식 논설위원

이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요소가 가장 강한 작품이다. 피츠제럴드는 프랑스 남부에서 조국을 떠난 미국인들과 함께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 다이버 부부는 바로 피츠제럴드의 부인 젤다의 친구였던 미국인 명사 부부 제럴드와 새라 머피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또. 이 소설은 정신착란을 앓았던 아내 젤다가 스위스에서 받았던 심리 치료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막대한 치료비를 대기 위해 피츠제럴드는 결국 소설 대신 할리우드 시나리오를 써야만 했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요절하고 만다. 젤다 또한 끝내 회복하지 못했으며 1948년 죽음을 맞을 때까지 정신 병원에 격리 수용되었다.

정신과의사인 딕 다이버는 어느 날 최 상류층의 니콜 워런을 치료하게 된다, 그녀를 치료하던 중 사랑에 빠져 결혼하였고 아름다운 아내와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상류층의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유쾌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던 와중 그 앞에 아름다운 여배우 로즈메리가 나타나고, 그녀가 딕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완벽하게만 보였던 딕과 니콜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간다.

딕은 아내 니콜을 사랑했지만 로즈메리와의 사랑은 또 다른 것이었다. 니콜과의 사랑과 결혼은 의사와 환자로써의 미묘한 부분이 있었고 어마어마한 니콜의 재산은 니콜과의 결혼생활을 받쳐주는 든든한 우산이었으며, 그것이 딕이 니콜을 사랑하는 어떤 조건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니콜은 부자에다 아름답지만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근친상간을 당하고 요양원에 갇혀서 정신병 치료를 받는다. 딕이 니콜을 사랑할 조건은 충분하지만 역시 그 사랑이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할만한 조건도 충분한 것이다. 둘은 결혼했지만 니콜은 아이를 낳고 다시 정신병이 재발하고, 딕은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린다.

상류사회에도 싫증이 나기 시작하고 삶의 염증을 느끼게 된다. 물론, 딕은 처갓집이 주는 물질적 부를 탐닉하고 상류층의 생활로 만족했으면 좋은데 로즈메리와의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모순을 발견한다. 결국 딕은 일탈을 하게 되고 니콜의 정신병까지 다시 심해지게 되자 니콜에 대한 애정이 끝났음을 알게 된다.이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와 마찬가지로 부자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또 하나의 고찰이다.

가난으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위대한 개츠비’, ‘밤은 부드러워’두 편의 소설로 담아낸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야심가였고 첫 번째 작품이 성공을 거두자 곧바로 자신과의 결혼을 주저하던 젤다를 찾아가 결혼한다. 이후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한 자신의 작품이 성공가도를 달리자 상류층에 몸담게 되고 사교계의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교계 생활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상류층들은 방탕했고 돈이 주는 쾌락에 물들어 있는 만큼 그 그늘도 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젤다는 정신병에 고통 받고 피츠제럴드 자신도 알콜중독에 빠진다. 개인이 쾌락으로 인해 불행하게 되는 것에 대해 누구도 제어를 하지 않았고 돈에 쪼들리게 되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 당시의 사교계였다.​작품은 상류층 사회에서 화려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행복하지 않은 그냥 그렇게 늙어가는 사람들의 어두운 면이 나타난다, 로즈메리는 상류사회의 사람들인 딕과 니콜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은 사실 망가진 사람들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시들어 빠진 째 그냥 그렇고 그렇게 늙어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부자가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은 가능하겠지만 이젠 그 사람과의 사랑이 색이 바래지게 된다. 결국 돈과 순수한 사랑은 애초에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제적 조건에 의해 사랑의 시작이 결정되는 것이라면 돈을 빼고 나면 그 사랑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현대사회에서 사랑의 조건에 경제적 부는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질적인 부분에서 현실을 도외시한 사랑은 결국 고통만이 있을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시작조차 못한다.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제적 조건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상실의 세대, 길 잃은 세대)였다면 우리나라 지금의 청년세대는 무슨 세대일까. 사실 특정 일부 계층을 제외하면 잃어버릴 것도 없는 세대아닌가. 작금에 이르러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류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자 들이 양심을 버리고 계속 용의 위세를 부리려 하는 시대,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재, 개구리, 붕어를 위해 더욱 공정과 정의가 필요한 시대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들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병식논설위원  webmaster@shilb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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