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혁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인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핵심 자원은 첨단 기술력 확보다. 선진국을 빠르게 뒤쫓는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er)가 아닌, 세계를 앞장서 이끄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위상 확보는 최첨단 소재·부품·장비 등에 대한 투자와 인력 양성이 관건이다.

물론 투자는 시대흐름이 반영돼야 한다. 한데 우리의 산업이 이에 뒤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산업계의 첫 번째 흐름은 디지털 대전환이다. 세계 신산업계를 뒷받침하는 핵심 부품은 시스템 반도체다.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는 첨단 정보기술(IT) 기기와 자율차·전기차(EV)의 두뇌 역할을 할 로직·아날로그 집적회로(IC) 반도체를 설계하는 전문기업(팹리스), 설계대로 반도체를 수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기업으로 이뤄진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3389억달러(약 374조원)로 2019년 2269억 달러에서 매년 평균 7.6%씩 고성장이 예상된다. 이 가운데 팹리스는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한국은 사실상 팹리스 ‘빈국(貧國)’이다.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1%대(삼성전자 제외)다.

이런 현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 도약을 위한 청사진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 주목되고 있다. 5년 만에 찾은 미국에서 이 부회장은 미국 내 제2 파운드리 부지를 텍사스 주 테일러 시로 최종 확정했다. 삼성은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해 총 170억 달러(20조원)를 쏟아 붓는다.

이 부회장은 사상 최대 규모의 미국 투자 확정이라는 큰 결정을 내렸지만 동시에 반도체 업계의 전운과 긴박하게 돌아가는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신산업 현장을 목도하고 온 무거운 심경을 내비치며 ‘위기론’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이 “투자도 투자지만,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고 말한 의미를 되새겨야겠다. 이 부회장이 언급한 “냉혹한 현실”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화두로 삼았던 ‘위기와 변화’의 연장선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초일류 글로벌 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우려를 십분 이해해 한국경제의 활로를 열기 위한 뒷받침에 나서야 한다. 기업들은 ‘기업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같은 그물망 규제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지방정부, 정치권, 기업 경영인들의 혜안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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