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원(6대) 

본사 부사장. 서울취재본부장

우리사회는 선동적이고 구호적인 메시지가 난무하는 사회로 변해버렸다.

소통을 말하지만 소통에 응할 대안도 준비하지 않은채, 오로지 비판할 고집만 준비되어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고착화된 배경에는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집단이 바로 정치인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변하지 않을 정치인들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다양화된 현대사회에는 각 분야에서 그 역할을 감당해야할 그리고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집단들이 참으로 많지 않는가. 그 중에는 국민의 시대적 정체성을 일깨워야 할 교수, 사상가. 철학자, 종교인들이 있다.

도올 김용옥!

교수, 사상가. 철학자, 종교인으로 일컬어지는 그를 석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가 이 시대의 석학(碩學)이 맞는가?

우리는 지금을 일제 강점기의 초기시대와 비유하기도 하면서 친일의 잔재들을 응징하기도 한다. 그 시대에 석학들은 어떤 자세였던가? 비판만을 일삼던 그들은 가장먼저 친일파가 되었고, 정작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투사들은 민초들이였지 않은가?

그대와 같은 기회주의적인 석학들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우리는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값비싸게 배운 지식을 비판을 위한 비판에 끼워 맞추고 선동적 메시지로 국민들을 현혹하여 인기몰이식 이벤트로 활용하는 그대를 진정 석학이라 할 수 있는가?

그는 “중국을 5,000년, 미국은 50년의 우방”이라고 했다. 우방을 년수로 이해하는 교수가 과연 자질이 있는 사람인가? 외교는 국익의 문제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과연 중국은 5.000년동안 우리의 우방이였던가?

수없이 침략을 일삼았고. 조공을 강요했고. 우리의 왕실과 백성을 능멸했고. 6.25때는 통일의 문턱에서 가로막은 적국이기도 하다. 맨손으로 맞서 싸운 학도병들의 피를 헛되게 만든 나라였고, 현리 오미재전투에서는 3군단을 몰살시켜 지금의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만든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이 우리의 일방적인 우방으로 고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가 지구촌이라고는 하지만 국력이 없는 지구촌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실적인 위기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고 주적인 적국을 함께 대적해 가는 것이 우방이란 개념의 최우선이라고 보는데 그대는 아닌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발언만을 할것인가?

북핵에 대해서도 세계 평화를 위해 중국에게 단호히 해야할 말들은 왜 하지 않는가? 중국 찬양일변도의 저서와 강의를 보면서 사대주의의 원초적인 정체성을 느낀다. 중국의 문화에 익숙한 그는 타 종교인 기독교를 부정하며 자기것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작태를 보여왔다. 민족주의자임을 자칭하며 비판을 즐기는 그대는 왜 동포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는 북한 정권에게 특유의 말장난을 하지 못하는가?

반기문. 유승민. 남경필등 대선 후보들에게 훈수한것이 진정으로 하는 말인가 ?

아니면 반대 이익을 위한 꼼수인가? 학생들의 교수로써 정도를 말하라. 사상가로써 바른 사상을 가지고 선동적인 언사는 자제하라. 철학자로서 그대의 철학이 독선과 고집이 아니기를 바란다. 국민들로부터 진정으로 인정받는 석학의 길을 가라.

정말 이제 그만 할때가 된것 아닌가 싶다.

난세에 영웅은 말장난하는 그대들이 아니라 바로 민초들이였다. 

침묵하던 민초들의 움직임이 그대는 정녕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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