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앞에 계산기를 내려놓아야

▲ 비전교회 정도출 목사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의 작은 바람이 아름다운 꿈으로 영글 때 까지 기다리고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 “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떠 올리며 내가 자랑할 것은 오직 주 예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뜻 앞에 계산기를 내려놓자’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정도출 목사 (68)의 저서의 서두에 있는 말이다. 서울 송파구 백제 고분로 41길 6-44 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교 소속인 비젼교회. 이 교회는 정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다. 비전교회는 그 이름처럼 작지만 강한교회를 꿈꾸는 ‘강소’ 비전교회다.

정 목사는 한국교회 목회자중 열정적인 현장 전도활동으로 손꼽히는 목회자. 아시아를 거쳐 전 세계 복음화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확장을 꿈꾸며 겸허하고 진실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정 목사의 살아온 삶의 궤적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그의 책속에 모두 담겨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법대에 들어갔지만 교회 내 교회 파괴주의자 이었던 그의 방황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 현실적인 논리가 강해 ‘면도날청년’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을 받고 사역자로 부름 받아 한국과 전세계의 복음화 통로로 쓰임 받고 있는 포기하지 않는 실제 하나님의 이야기가 서술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많은 목회자들이 있지만 정 목사 처럼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도 드물다. 비전교회와 정 목사를 알기위해서는 먼저 그의 지나온 이력을 살펴야한다. 여느 사람들과 비교해도 정 목사의 이력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산골동네인 경북 포항 오천에서 태어난 정 목사는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거쳐 뉴욕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신학박사. 비전교회위임목사 (36년째 시무)인 그는 총회 남북한 선교통일위원장, 총회 부흥 전도 단 대표단장, 총회 재판 국 전문위원, 총회헌법위원회전문위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초빙교수,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대표회장, 민족통일복음화운동본부장,기독교세계선교회이사장을 맡아왔다.

정 목사의 말처럼 그의 어린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면 보통 어린이들처럼 유복한 환경이 아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은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앗아가 버렸고, 가진 것이 없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형편이었다. 체념과 포기가 일상화 됐던 그의 인생은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좌절과 분노로 뒤엉킨 그를 찾아와 세상이 그어놓은 한계선을 지우고 새로운 가능성과 꿈을 심어주었다. 생사의 고비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뒤 바뀌었고, 그로인해 그 에게 준 능력 안에서 꿈을 실현시키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출 목사가 태어난 곳은 포항시 오천읍으로 포항시내에서도 남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되는 외진마을.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태아시절에는 거꾸로 자리잡고 있어 산모인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어렵사리 세상에 태어났다. 당시 교회 장로로 신앙심이 돈독했던 그의 부친은 아들 없는 2대독자 집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다는 정표로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며 서원기도를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도 ‘도출’이라 지었다. 세상에 나아가 전파하는 부흥사를 뜻하는 도출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신앙고백이었다.

유년시절, 시골면장인 아버지와 사려 깊은 어머니 덕분에 어려움 없이 지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사라호 태풍으로 그가 사는 오천지역 농경지가 모두 물에 잠긴데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들어간 중학진학, 장학금과 자력으로 학업을 마친 고등학교, 열악한 시골환경을 이기고 수재들만 모이는 서울대법대에 들어간 그의 전력에는 모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움이 뒤따랐다.

하지만 기독교학생회 활동을 하던 대학시절 기독교무용론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러나 학창시절 그렇게도 하나님을 부정했지만 자신의 생활반경에는 어디에나 십자가가 있었다. 남들이 데모를 할 때 그는 면도날 같은 논리로 후배들의 신앙까지 뒤 흔들어 놓았다. 때로는 대학부 목사들을 향해 비판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대학졸업 무렵 법대교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시절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갔다. 그 결과 내린 진단은 간이 곪고 썩어 혼수상태에 빠져 죽는 무서운 병이라는 진단과 함께 죽음의 문턱에서 입관예배까지 드렸다. 그때 환상 속에 그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힌 피 묻은 손으로 그의 몸을 만지자 온몸이 불덩어리같이 뜨거워지면서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했다. 의식이 회복된 후 곪았다던 간의 상처도 말끔히 사라졌다. 이후 회개의 기도를 통해 새로운 신자가 된 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다.

1981년 7월 5일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고 누가 뭐래도 믿지 않고 부슬비가 내리는 날 개포동 야산에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그의 목회의 시작이었다. 이후 차츰 교회가 부흥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 한 후 부흥사의 사명이 새롭게 다가왔다. 30년 가까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갈등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자신과는 달리 불과 일주일 만에 변화되는 부흥의 기적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래서 지금도 전국을 돌며 부흥사의 사역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 시무하는 비전교회라는 이름은 미래를 향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전교회는 지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개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아가 2:10) 라는 말씀아래 정목사를 중심으로 전 교인이 담쟁이 가족으로 뭉쳐 영적으로 결속된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

쓰임 받는 도구가 되도록 늘 기도드리는 일이다.

그의 마지막 사명은 작지만 건강한 교회가 서로 연합해 세계선교를 감당 할 수 있도록 성령의 띠를 더 단단하게 묶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되도록 늘 기도 드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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