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571돌 한글날이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28개의 자모(子母)를 가지고 모든 소리를 나타내게 만든 과학적 문자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창제 의도와 시기 그리고 방법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문자는 한글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의 문자 한글은 소중하고 뛰어나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는 국어를 기록할 때 한글 전용으로 할지 한자 혼용으로 할지를 명확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세는 한글 전용으로 기울었지만 시중에서는 한자 교육이 유행하고 있다. 왜 이런 기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국어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자문명권, 즉 중국의 영향이 절대적이던 시기에 우리의 언어는 중국식 한자어를 많이 받아들였다. 이것은 일제 시기 일본식 한자어(철학, 사회, 개인, 자유)가 범람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해방 후에는 미국의 지배하에 영어단어가 엄청나게 유입됐다. 다시 말해 언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산물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영향을 준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한자어가 국어 어휘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영·미 권 학교에서 가장 수준 높은 중·고등학생들은 라틴어를 배운다. 그것은 어려운 고대어를 배워서 위화감을 조성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어의 뿌리가 되는 라틴어를 배움으로써 영어를 더 잘하기 위해서이다. 자신들이 가진 언어의 뿌리를 알면 알수록 어휘선택이나 개념정리를 하는데 있어 더 정교하고 예리해질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중국어와 한국어가 라틴어와 영어의 관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일상생활에서부터 법률, 의학, 신학에 이르기 까지 한자어가 안 쓰이는 곳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글 전용을 무조건 추종할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글 전용은 우리의 언어사용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적 발상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한자를 모르고 한글만 사용하는 이상 어휘력이나 문장력을 향상시키는데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북한을 들 수 있다. 북한은 온 나라가 한글 전용이다. 북한 노동당의 기관지 ‘로동신문’을 보라. 그 언어사용의 조악함과 천박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남한에서는 초등학생부터 한자를 배우느라고 난리법석이다. 시중에는 숱한 한자교재가 나와 있고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사교육으로 한자를 가르친다.

이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됐다. 지금은 그저 영어만 잘하면 출세하고 성공하던 시대가 아니다. 세계화 시대 진정한 어학능력은 자국어의 완전한 마스터에서부터 시작한다. 국어실력의 튼튼한 밑받침은 한자교육에서 시작한다. 한자를 알아야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미래를 말할 수 있다. 한자를 구시대 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겠지만 한자를 교육하는 이유는 한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어실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는 좀 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한자를 과거의 유물로만 생각하지 말고, 현재 우리 국어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인 것을 인정하면서 언어교육과 정책을 짜나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글 전용을 하더라도 한자 교육은 반드시 시켜야한다. 그것이 국어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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