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과 김주영 한국노총위원장(왼쪽).노동개혁을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말이 사실상 혼란스럽다.

기업과 노동계가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이를 정부가 부채질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에는 진보진영이 당연하게 내세우는 경제 관련 테마들이 있다. 재벌개혁과 공공부문 확대, 친노동적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개혁 전문가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우리 경제 상황이 시급하다”며 “중소기업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해 왔다. 재벌개혁과 중소기업 육성정책은 재벌대기업 횡포에 불만 있는 다수의 중소기업 종사자에게는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노조 관련 정책도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청와대 만찬에서 “노동계와 정부사이에서는 국정파트너가 돼야 한다”며 노동계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대선 전까지는 사실 표를 의식한 공약이 많았다면 지금부터는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경제를 내세운다. 5대 국정 목표의 둘째가 ‘더불어 잘사는 경제’며 그 핵심 과제가 일자리 창출이다. 하지만 중요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노동개혁 양대 지침으로 불리는 저성과자 해고 절차를 담은 ‘공정인사 지침’과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연봉제나 역할·직무급으로 개편하기 쉽게 하는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공식 폐기했다. 재계에선 정부의 친 노동정책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등 양대 노총 대표와 청와대에서 취임 후 첫 간담회를 열었다. 저녁에는 노동계 대표단과 본관 계단 앞에서 티타임을 가진 뒤 본관 충무실로 이동해 만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의 국정목표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많은 정책 공약을 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개최한 일자리위원회에서 문 대통령은 "경영계와 마찬가지로 노동계를 국정 파트너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를 실행에 옮겼다. 정부는 그동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양대 지침(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일방 변경) 폐기 등 친(親)노동 정책을 펼쳤다. 노사정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양대 노총이 간담회에 참여하기로 한 배경에는 이런 우호적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노조가 화답했다. 양대지침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취임하시고 그동안 어려웠던 문제들,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나 2대 지침 폐기 문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한국노총도 이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노동계 의견을 청취하는 것은 좋지만 그들 앞에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사안이 있었다. 노조가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생긴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다. 산업연구원 조사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너무나 크다.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59.6%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이유 중 하나는 전체 노동자의 10% 안팎에 불과한 양대 노총 소속 대기업 강성 노조다. 이에 대한 해결이 없이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 노조는 매년 큰 폭의 임금 인상 혜택을 누린다. 반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러한 입장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더 많은 수당과 성과급을 요구하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는 앞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득권 노조의 양보가 선행돼야 한다. 노동개혁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가 해답이다.

24일 노동계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노동시장 양극화에 동참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노동자를 국정의 파트너로 모신다”는 원론적인 말만 했다. 사실 노동개혁은 진보 쪽에서 더욱더 어울리는 용어다. 노동개혁을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말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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