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이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살렘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이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멜기세덱이 가지고 나온 떡과 포도주도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에게 행하신 성찬식의 예표이다. 그리고 오순절이 되자 성찬식이 행해진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해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형성된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인에게 예루살렘은 틀림없는 성지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표해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성경에 익숙한 우리는 이스라엘의 수도를 당연히 예루살렘으로 알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기를 거리끼며 2대 도시인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예루살렘을 성지로 생각하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다는 명분이 제시되지만, 사실상 석유를 생산하는 이슬람 국가들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금기를 깨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고, 침략과 파괴의 역사이다. 유대인이 최초로 국가를 세운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고서도 한참 뒤의 일이며, 그들이 성군(聖君)으로 여기는 다윗이 왕이 될 때만 해도 예루살렘에는 아직 여부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예루살렘이 성지가 된 것은 솔로몬에 의해 성전(聖殿)이 세워지면서인데 이 성전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되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이다. 예수님 시대에도 헤롯성전이 있었지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는 주님의 예언처럼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다시 파괴된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성경적 역사는 예루살렘을 성지로 봐야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현대 이스라엘의 시작은 유대인의 시오니즘으로부터 출발한다. 시오니즘은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를 재건하자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1917년 11월 2일 영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내의 유대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는 밸푸어 선언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수차례에 걸친 아랍과의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하고 예루살렘도 손에 넣는다. 하지만 현재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있고,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이라는 성전 유적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유대인과 아랍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결과 투쟁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문제 이전에 종교적인 문제이다. 만약 양자의 갈등이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라면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에게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예루살렘을 강점한채 그들의 소원대로 이슬람 사원 자리에 성전을 재건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를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이 이들 유일신 종교의 공통 조상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아브라함의 두 아내를 두고 이런 말이 나온다.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5,26)” 하가는 애굽 여인으로 사라의 종이었다. 하가는 아브라함에게서 육체를 따라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지만 사라는 자유자로서 하나님께 약속을 받아 90세에 이삭을 낳았다. 그런데 이 하가는 지금 있는 예루사렘을 뜻하고,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을 뜻한다. 따라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성지라고 믿고 싸우는 것은 종노릇이다. 성지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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