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다. 이른바 컨트롤 타워다. 국가정책을 입안 시행하는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몇 십 개의 부처로 구성된 거대한 행정부 조직체다. 각 부처는 산하에 수많은 연구단체나 공기업 같은 조직들도 갖고 있다.

예컨대 경제 정책만 하더라도 청와대에 경제 업무를 보좌하는 정책실장과 경제수석비서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금융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등 다수의 경제 현안 관련 부처들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 몸담고 있어 큰 틀에선 지향하는 정책이 같아도 세부사항에선 각자 생각이나 경제 철학이 다를 수 있다. 사전 조율하고 조정하는 책임자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

상식과 사리가 이러함에도 김동연 부총리의 위상을 둘러싸고 ‘무늬만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평가가 관가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김 부총리의 발언에 '영(令)' 이 서지 않는다. 김 부총리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꺼내 든 ‘최저임금 차등화 적용’ 카드도 여권이 뭉개는 모양새다.

사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은 결국 실업률 상승과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7천530원으로 지난해보다 16.4% 인상됐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목표로 인상할 경우 올해 최대 8만4천명, 내년에 최대 9만6천명, 내후년에 최대 14만4천명의 고용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부총리는 최근 고용 상황에 대해 ‘가슴에 숯검댕(숯검정)을 안고 있다’며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김 부총리가 ‘고용 쇼크’에 대해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는 건 언뜻 당연하다. 문제는 고용 악화의 주원인을 제공한 청와대와 여권 인사가 실질적으로 정책을 주도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불협화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이 큰 틀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한 반면 김동연 부총리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며 속도조절론을 제시한 바 있다. 급기야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 부총리마저 서로 엇박자를 내는 형국에 이르렀다. 이 총리는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저임금 차등 적용과 관련해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면서 어딘가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임금이) 더 올라가는 일이 생길 것”이라며 “현실에서는 오히려 역작용이 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틀 전 대정부질문에서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던 김 부총리의 발언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김 부총리가 조율되지 않은 방안을 성급히 공개했다는 우회적 비판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시점, 정부조직도의 근본 취지를 되새기길 바란다. 기재부 장관에게 부총리 지위를 부여한 것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권한을 행사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부총리가 제 역할을 못하면 인사권을 행사하면 된다. 지금은 경제위기 상황이다. 할 일은 태산인데 정부 내 불협화음이 증폭돼서야 어디 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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