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민의를 수렴하는 대의기관이다. 국회가 할 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법을 만드는 게 주요 기능이다. 그래서 입법부로 불린다. 우리 헌법 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국회는 국민의 생활에 필요한 법을 만들거나 필요한 내용을 고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를 지고 있다. 역대 국회에서 입법에 힘쓴 이유이다.

그런데 근래 20대 국회에선 이해 못할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기존 발의안과 비슷한 법안을 냈다가 폐기된 비율이 이전 국회에 비해 두 배가량 높아진 것이다. 의정 실적을 부풀리고자 의원 간 상호 묵인 하에 몇몇 문구만 바꾼 유사 법안을 무더기로 제출했다가 폐기하는 행태가 더욱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20대 국회(2016년 5월 30일 개원) 들어 ‘처리의안’(발의 법안 가운데 계류 중인 것을 뺀 것) 4천76건 가운데 2천233건이 ‘대안반영폐기’됐다. 폐기율이 54.8%나 됐다. 20대 국회가 절반도 지나지 않아 직접 비교에 무리가 있지만 18대 국회 27.7%(처리의안 1만 3천913건 중 대안반영폐기 3천845건), 19대 국회 26.1%(1만 7천822건 중 4천663건)에 비해 폐기율이 두 배가량 높아졌다. 대안반영폐기란 국회 상임위원회 등에서 여러 개의 유사·중복 법안을 하나로 통합해 ‘대안’을 만든 뒤 폐기한 것을 말한다.

국회의 대표 권한인 입법활동이 실적쌓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입법을 제어하기 위해선 의정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현행 정당이나 비정부기구(NGO)의 의정활동 평가는 '법안발의건수'나 '회의 출석률' 등 에 한정돼 있다. 양적평가라면 누구나 쉽게 집계가능하다는 점이 꼽힌다. 그러다보니 의원들은 숫자의 함정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법안 베끼기, 법안 재활용, 무더기 자구수정, 무분별한 공동발의 등은 의원들이 건수에 집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의원들의 입법 의지를 북돋우면서, 꼭 필요한 법안만 제출하는 제도 보완이 마련돼야겠다.

의정활동에서 법안발의는 의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고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만큼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은 국회의 무능과 의원들의 구태에 대해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회에 부정적인 비판 여론의 핵심은 정치권이 결국 자기 이해에만 매몰된 채 국회의 존재가치인 입법기능을 비롯한 '사회의 공기(公器)'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의원들의 맹성(猛省)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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