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칼럼을 시작하며...

신항식 (전 홍익대 교수) 임학근 기자l승인2019.03.26l수정2019.03.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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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항식 전 홍익대 교수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1925년 1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신채호의 글이다.

사대주의에 관한 한, 조선 사람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민주공화정이나 대통령제 혹은 내각제, 삼권분립, 시장경제 같은 굵직한 제도도 무작정 들여와 받들면서 살지만 녹색혁명, 산아제한, 그린벨트, 탈규제, 양성평등, 탄소배출 등과 같은 서구의 의제들도 아무런 비판도 없이 받아들여 그것이 마치 한국 고유의 정책인 양 받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진정, 줄기 찬 사대주의이다.

사대주의는 무엇보다도 한 나라의 주권이나 줏대 혹은 삶의 정당성의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태도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대주의는 매판, 매국노들을 양산한다. 우리는 이완용 같은 사람들을 매국노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조선의 정부와 사회가 근본적으로 사대주의에 매몰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매국노가 언제고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의 조선이었다. 왕인 고종마저도 외교권을 쉽게 내어 주었고, 그를 포함한 고관대작들이 일본에 붙었다, 러시아에 붙었다, 미국에 붙었다 하는 희대의 행태를 벌이지 않았는가. 작금의 대형교회나 친미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솔직히 매국이면 뭐 어떤가, 나만 좋으면 되지”라고 읽힌다. 하지만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사대주의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다음 같은 큰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사대주의는 나라의 살림살이에 정책적 혼선을 영구히 만들어 놓는다. 즉 국가로 하여금 변동하는 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린벨트의 예가 있다. 1950년대 처칠의 사위 샌디스(Duncan Sandys)가 그린벨트 프로젝트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영국식 정원이나 자연 숲 보존정책과는 관계없는 부동산 투기 및 노동력 집중 정책이었다. 벨트 안팎을 기준으로 개발투기를 일으키고 노동자와 중산층의 터전을 갈라놓으며 동시에 세수확보를 위한 벨트조이기와 풀기의 정책인 것이다,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면서 도시조경에 좋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그린벨트를 통해 도시가 조경된 적이 없다. 그린벨트의 주변으로 투기와 부정부패만 남았다.

최근의 예를 든다면, 가상화폐를 어떻게 판단할지를 몰라 미국의 눈치나 보는 한국정부가 있다. 화폐란 교환의 도구이니 만큼 물품과 함께 유통되는지를 점검하여, 그렇다면 화폐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증권이나 투기로 인정하여 법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기본상식마저 없었다. 그 사이, 조 단위의 한국 돈이 가상화폐 명목으로 해외를 돌아다니고 수백억대의 사기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국민경제를 유린하고 있다.

둘째, 사대주의는 세계 불평등을 고착화 한다. 예를 들어, 산아제한이 그렇다. 먹을 것이 없으니 아이를 낳지 말라는 것은 영국의 유물론이다. 이를 맬더스주의라 하는데, 인간은 식충이며 육체 노동력이라는 편견이다. 인간은 존엄하다는 의식은커녕 창의성 있는 노동력이기도 하다는 판단이 거기에 없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사람살이를 가만 놓아두면 먹을 것 많은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낮아, 후진국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쉽고 부를 분배하는 효과도 있다. 부의 분배는 경제구조를 조절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지 생명에 칼을 들이대는 정책은 틀린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산아제한 정책이 그래서 성공했는가? 그 결과를 아무도 모르는, 말 그대로 사대주의 정책이었을 뿐이다.

산아제한 정책의 산실인 영국과 미국은 어떤가. 영국은 다른 나라의 산아제한은 찬성했어도 자국의 산아제한을 실제로 한 적이 없다. 1930년대 우생학 논쟁의 한복판에서 쇼우(George Bernard Show)는 “필요 없는 인종을 대량으로 죽이는 데는 가스실이 좋을 것“이라 했다. 증거는 쇼우와 같은 살인마의 말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은 산아제한을 한다면서 7000명 가까운 흑인, 히스패닉 여성을 강제 불임시술 시켰다. 백인여성은 단 한명도 시술을 받지 않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한국과 중국은 인종주의 정책인 산아제한을 무슨 대단한 정책인 양 받아들였다. 효과도 예견도 없이 국민을 못살게 굴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가족 스스로 아이를 낳지 않는 추세이며 한국은 가족계획 이전에 이미 낳아 놓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셋째, 사대주의는 쓸데없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사업을 하다보면 재해가 발생하여 임금이나 재료비와는 관계가 없는 비용이 나타난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사대 정책을 받아들이면 쓸데없는 비용만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교육정책이다. 한국은 서구의 지식인들도 이구동성으로 비판했던 볼로냐 교육개혁(1999년-2010년)을 내용도 모른 채 무작정 받아들였다. 계획의 내용은 1) 표준화되고 상대화 된 커리큘럼 2) 학위를 통일시켜 노동시장의 평가에 맞도록 조정 3) 대학 간 경쟁을 유도 4) 학자금 융자와 장학금 확대 5) 자유전공과 연수 및 학점교환 실시로 요약된다. 이 계획에 대한 비판은 1) 창의성 없는 우민화 정책 2) 일률적인 노동력의 세계화 3) 국가와 기관의 재정적자 4) 가계부채 확대 5) 학문의 놀이화와 상업화로 고스란히 요약된다. 한국의 교육계는 이런 비판의 어느 한 항목이라도 독자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항목 모두 사회적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

사대주의가 끼치는 실용적인 폐해의 네 번째 것이라면 앞선 세 가지 폐해를 모두 합친 것이다. 사대주의는 무엇이 옳고 그른 지에 관한 생각의 토대를 없애 버린다. 사람 사는 일이 똑같다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고 삶도 다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서구의 관점은 한국과 다르며 그 내용들(제도와 문화) 또한 한국의 풍토, 기질, 문화와 전통, 삶의 이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지난 400년간 세계사의 주인이었던 앵글로색슨과 유럽과 달리 세계의 주변만 맴돌았던 한국이 세계에 대한 관점과 삶의 토대를 서구와 함께 공유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이슬람과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마저도 그런 망상을 갖지는 않는데, 이상하게도 한국만이 이런 망상에 빠져 있다. 그러하니 사상마저도 유행에 따라 한 때 좋아했다가 싫어하고 싫어했다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정신적 외로움과 주저함이 한국인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이래가지고서는 인생을 살 수가 없다. 눈앞의 이익만 취하고 도망쳐도 다시 회한에 빠지는 영혼 없는 삶만이 남는다. 생각이 없어서 핑계도 없는 인생. 핑계 없는 무덤. 이것이 사대주의가 끼치는 삶의 안타까움이다.

사대주의는 무엇 때문에 생기는가? 무지 때문에 생긴다. 몰라서 그런 것이다. 멀리 있어서 신비롭고, 잘 모르니까 따르고 싶어 하는 사춘기 아이들과 같은 심리가 사대주의다. 무지가 문제라면 알면 되는 것이다. 뭘 모르면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는 고집이라도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 해도 당하기는 매 한가지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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