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항식 주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대학스승 퀴글리(Carroll Quigley)는 다음처럼 말했다. “양당이 하나는 우파, 하나는 좌파의 이념과 정책을 대변한다는 것은 세뇌에 물든 이들의 생각이다. 학계의 탁상 공론가들이나 받아들일 멍청한 생각이다. 양당은 거의 같다.” 이것이 미국 정치에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세계의 어느 사례를 보더라도 일반화가 가능하다. 소수정예 정당일 때는 제 깐에 이념정당이랍시고 깨끗한 척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당이 세를 넓히는 순간부터 정치의 본모습 즉 ‘사바사바’(음모)가 정석이 된다. 오늘날의 유럽처럼 그렇다. 정당의 이념은 온데간데없고 초국적 기업이나 이권에 연관한 국제, 국내 단체의 거수기가 되어 버린다. 왜 그럴까? 정당정치란 원래부터 돈이 만든 정치였기 때문이다.

자고로, 돈 버는 사람은 정치이념에 좌지우지 하지 않는 법이다. 사업이 이념인데 무슨 이념이 또 필요한가. 그는 사업이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이를테면 은행원이 대출업무 말고 투자에 나서려면 법을 바꾸어야 한다. 건설업자는 정부의 개발지 선정에 절실하게 참여하고 싶어 한다. 기업이 과세를 피하려면 정치권과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사업가들은 정치권을 홍팀(진보좌파) vs 청팀(보수우파)으로 나누어 로비를 하고, 보다 큰 사업가들은 이 둘을 관리한다. 퀴글리의 말 그대로이다. 경제인이 정치의 주인이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협잡꾼이다. 미국의 예만 들자.

1949년 미 의회가 남한에게 1억 5천만 달러의 군사원조를 승인했다. 그러나 돈이 남한으로 가지 못했다. 한반도의 전시 환경을 미 의회가 아니라, 기업이 조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 군산복합 기업의 행정부 내 전문가였던 래티모어(Owen Lattimore)는 “우리가 할 일은 남한을 남 몰래 몰락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라 했다. 즉 남한을 약하게 만들어 북한의 침공을 받게 한 후 미국 기업이 그곳으로 들어가 경제를 장악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 때문에 반공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의도가 있었든 없었던, 실제는 그의 말대로 흘러갔다. 잘 알다시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한반도를 극동방위구역으로부터 제외시켰고, 남한을 무장시키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기업의 무기와 물자가 일본을 통해 남한 땅으로 보내졌고 미 정부는 이들에게 대금을 지불했다. 미국은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지만 기업의 무역은 달성되었다. 특히 북한 땅에 떨 군 기업의 폭탄은 제 2차 대전 시 태평양 군도들에 떨어진 폭탄보다 많았다.

1951년 2월 중순부터 미군과 중국군은 휴전카드를 내 밀었다. 평화회담을 하자 했다. 그러자 미국 기업들은 “무기투자 붐이 새로 일고 있는데 투기꾼들이 평화공포를 만들어내고 있다”(Business Week, 1951년 4월 14일)며 종전은 곧 경제적 공포라고 홍보 헸다. “갑작스런 평화는 사업을 망칠 수 있다” (New York Times, 1951년 5월 19일)는 것이었다. 휴전카드가 나온 지 수개월 동안, “휴전은 사업가들에게 불안을 줄 수 있다” (Monthly Letter, The National City Bank of New York 1951년 8월 호)면서 휴전협정을 막았다. 한국전쟁은 아무 가치도 없이 2년을 더 이어갔다. 이들 기업에게 전쟁은 단지 사업일 뿐이었다. 도미노이론도, 자유수호도, 민족 독립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냉전의 희생자라면 라오스도 빼 놓을 수 없다. 1950년대까지 라오스는 중립국이고자 했다. 프랑스와 미국은 라오스를 억지로 좌우로 분열, 대립시킨 후 서로 내전을 벌이게 만들었다. 수천 년 누가 왕인지도 모르게 살아온 50여개 부족나라 라오스가 막 입헌제를 실시하자마자 좌우 이데올로기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미국은 라오스의 중립성을 지켜준다며 내전에 끼어들었다. 개발지원을 핑계로 라오스의 시골 깊숙한 롱 챙에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라오스의 극우 엘리트들을 훈련시키고 내전을 지원했다. 미국은 일피쌍타로 라오스와 베트남을 취급했다. 현대사학자 서튼(Anthony Sutton)이 밝히듯이, 미국기업은 행정부를 부추겨 남베트남에 융자를 해주고 물자를 팔았고, 소련은 미국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북베트남과 교역을 했다. 체이스맨해튼 은행은 이탈리아의 피아트사로 하여금 소련에 카마츠-카마 트럭공장을 짓게 하고 트럭을 베트콩에게 납품토록 했다. 라오스에서 생산된 아편도 관리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미군에게 제공해 주었다. 자국 미군 25%를 아편쟁이로 만들었다. 결국 공산주의자들이 베이스캠프를 차지하자 북부 라오스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이 모두 달러와 무기장사를 위한 기업 활동이었다. 한국이나 라오스는 돈이 없으니 미국인들의 세금을 털어내는 기업 활동인 것이다. 여기에 무슨 좌우가 있는가. 오로지 바보들만이 진보좌파, 보수우파로 세뇌되어 기업 활동을 도와 준 것이다.

제 2차 대전 초기, 상원의원 트루먼은 나치 독일과 공산 러시아 중 이길 편에게 붙어야 한다며 다음처럼 말했다. "독일이 이길 것 같으면 러시아로 가서 러시아를 도울 것이고, 러시아가 이길 것 같으면 독일로 가서 독일을 도울 것입니다. 아무튼 양쪽 모두 최대한의 피해가 있도록 해야지요.(Time, 1951년 7월 2일)" 일개 의원의 입에서 술술 풀려나오는 이런 경영학적인 발언은 실은 미국 정부 안에서는 공공연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트루먼은 KKK단원이기도 했는데 그에게 좌우 정치이념은 인종주의 편견보다 덜 떨어진, 매우 다루기 쉬운 게임 같은 것이었을 뿐이다. 좌우를 떠나 결국 이길 편이 러시아라면 공산주의자들과 일을 함께 도모해도 문제가 될 이유가 없었다.

5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미국 수뇌부는 변하지 않았다. 2008년 미국 최고의 지성 뷰캐넌(Pat Buchanan)은 동부유럽을 독일나치에게 주었어야 했다며 짜증을 냈다. 히틀러가 영국과 함께 러시아를 공격하고 싶어 했지만, 영국과 미국이 쓸데없이 러시아를 편들어 나치를 무찌르는 바람에 유럽시장의 반을 러시아에게 내어주었다는 짜증이다. 차라리 나치에게 내어 주었다면 동유럽을 미국이 수월하게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로 영국은 1945년 5월, 전쟁 종료 즉시 나치 잔병들을 모아 러시아를 대대적으로 공격할 계획(Operation Unthinkable)을 세웠다가 소련의 군사력을 파악한 뒤 취소한 적이 있다. 싸움을 벌이는 양쪽 모두를 지원해서 양쪽 모두로부터 이익을 얻어내는, 꿩 먹고 알 먹는 변증법이다. 돈을 버는데 이처럼 좋은 방법이 없는 것이다. 냉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금융과 초국적 기업들의 정치적 불장난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좌우로 나누어 다투는 한국인들을 보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내가 지금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주제가 나의 바깥에서 들어 온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 것인가만 알면 되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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