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항식 주필

이반 파블로프는 조건반사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 그런 단어를 쓰지도 않았다. ‘Условный’(조건이 되면, 제약에 따라, 불완전한)이라 했지 무조건 반사, 조건 반사 어쩌고저쩌고 한 것이 아니다. 알베르 아인슈타인도 유명한 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이 아니다. 광전효과론으로 받았다. 사람이 공부 좀 하고 영향력이 있겠다 싶으면 자꾸 써 먹으려는 권력이 있어서 학계라 할지라도 소문이 잘못 나는 것이다. 파블로프는 배가 고프면 짜증나고 위산이 활성화되듯이, 사람의 신경계가 소화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소화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개에게 실제로 음식을 주는 것(무조건 반사라 불렀던)이 아니라 딸랑이를 흔드는 식으로 실질과는 다른 조건을 부여해서 개로 하여금 침이 나오게 한 방법(조건반사라 불렀던)은 소화기능을 알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그의 실험은 궁극적으로 심리적인 요소가 동물의 신체와 신경에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조건에 반응하더라는 것은 가설을 유지하기 위한 데이터였을 뿐이었다.

성격은 다소 어두웠지만 맑은 영혼을 가졌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를 전 남자친구로 두었던 아내에게 그는 “그 친구, 참 당신을 닮았구려.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친구야”라 했다. 파블로프 또한 맑은 영혼을 가진 학자였다. 파블로프의 실험 대상자가 만약 인간이었다면, 심리적인 마음가짐과 의지, 열정과 분노 등 여러 가지 심적인 요소가 신경계에 영향을 주고 결국 행동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이르게 했을 것이다.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교수 토디스(Daniel P. Todes)의 바른 지적과 같이, 그의 생리학은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의미하는 반 유물론이었다. 음식이 아님에도 딸랑이를 흔들면 개가 침을 흘리더라는 인공적인 유물론은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파블로프는 1904년 12월 12일 노벨상 수상식에서 생리학이나 심리학뿐만 아니라 “예술, 종교, 문학, 철학, 역사 등 모두 합세해서 인간심리의 메커니즘을 공부하자”면서 “인간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단언했다.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함부로 대하지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그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연구를 한 쪽으로만 밀어 붙여 파블로프의 철학과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게 했다. 그것이 조건반사이론이다. 실물과는 전혀 관계없는 조건을 반복적으로 제공하여 동일한 반응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더 나아가, 조건에 기대어 사람의 심리까지 조작하는 생뚱맞은 방법으로 변해 온 것이다. 인간의 희로애락, 열정, 의지, 분노까지 모두 깔아뭉개고 언어와 이미지 환경을 포함한 물리적 조건만 밀어 붙여 시민을 조종하는 막장 유물론이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현대 사회과학의 근간을 구성하는 조건반사이론은 미디어 조작의 이론이며 반 파블로프적인 이론인 것이다.

1919년 10월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이 파블로프를 찾아 왔다. 그는 다음처럼 말했다. “나는 러시아 사람들을 공산주의 패턴으로 생각하고 반응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러시아에는 구태의연한 개인주의가 너무 많아 공산주의가 이겨낼 수 없어요. 해롭죠. 우리 계획을 방해하거든요. 우리는 개인주의를 없애야겠어요”라 했다. 파블로프는 아연실색하며, “사람들을 평균화시키고 싶다는 의미 인가요, 모든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도록?” 레닌은 “바로 그겁니다. 사람은 교정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원하는 데로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파블로프는 공산주의자들이 인간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며 끝없이 충고를 해주었지만 1923년 결국 “(볼셰비키가 시키는) 사회적 실험을 위해서라면 개구리 다리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레닌이 하사했던 추가적인 배급품도 받지 않았다. 살인을 일삼다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트로츠키를 향해서는 “(러시아인의 주권을 빼앗은) 더러운 유태인 새끼”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러나 볼셰비키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레닌은 파블로프를 ‘생리학의 칼 마르크스’라고 설레발을 쳤으며 코민테른 사무총장 부하린은 조건반사이론을 ‘유물론의 강철무기창고’라며 칭송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항상 이런 식이었음을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그러나 이것이 본격적인 강철무기로 사용된 곳이 미국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른다.

미국은 “학교선생의 역할은 반응을 유도하거나 막아서 원하는 변화를 이끌거나 원치 않는 변화를 제거하는 일"이라는 파블로프의 개 교육실험을 일찍 시작한 곳이다. 이것이 1906년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았던 과학심리학의 아버지 에드워드 손다이크의 주장이었다. ”우리의 소망은 사람들이 우리가 요리하는 데로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무슨 철학자나 지식인, 과학자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에(just where they are) 이상적으로 적응토록 하는 것이다“가 미국교육을 장악한 1913년 전미교육위원회의 강령이었다. 조건반사이론은 교육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회과학과 미디어에 침투했다. 대중은 멍청해서 조건에 반응한다는 월터 리프먼의 대중 양떼론(1922)도, 조건만 변화시키면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미디어조작은 민주주의“(1928)라는 괴변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공산주의와 똑같은 미국교육위원회의 방침이었다. 이 방침은 세계로 확대되어 유네스코의 교육원칙에 적용되었다. 유네스코의 설립자 줄리언 헉슬리는 “교육 프로그램에 있어서 유네스코는 최종적으로 세계의 정치적 일률성을 요구하는데 강조점을 둘 수 있으며, 세계인들을 민족단위로부터 세계조직으로 주권을 넘기도록 만드는데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1946 유네스코 설립 준비위원회)라 했다. 그의 동생 알도스 헉슬리는 1959년 “교육은 늙어서도 동일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일”이라 맞장구를 쳤다. 유네스코의 교육방침은 세계시민을 정치적으로 한데 뭉치게 하고 국가주권을 없애 정치를 합병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표준화되고 조건에 잘 따르는 양떼 같은 시민이 필요했던 것이다.

1992년 유엔은 “교육이 많아질수록 지속가능성에 위협이 커진다”면서 앞으로의 교육은 “자원을 더 많이 요구하지 않도록 그리고 물품을 소비해서 오염물질을 만들어 내지 않도록 교육수준을 이끄는 것이다”(21세기 유엔 지속개발 의제)라 공표했다. 환경을 위하여 교육을 시키지 말거나 수준을 떨어뜨리자는 것이다. 이는 교육, 과학, 문화에 있어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며 똑같은 라이프스타일과 인생관을 추구”하는 유네스코 초대위원장인 헉슬리의 교육강령과 맥을 같이 한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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