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항식 주필

이탈리아에서 건너 온 미국 마피아를 그린 영화, 대부 1을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조직의 상급보스가 보스의 막내아들이 애인의 전화를 무뚝뚝하게 받자, “전화를 왜 그렇게 받아? 마음 깊이 사랑해라고 말해야지”라 훈계를 하면서 요리를 가르쳐 준다. 그러자 보스의 장남이 나타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예요”라면서 핀잔을 준다. 이 장면은 이탈리아 남성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자기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일과 요리는 대다수 미국남성에게는 맞지 않는 남녀사의 일이다. 그게 중요한 표현이 아니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미국남성에게도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 표현이 다르다. 미국남성은 이탈리아인들처럼 열정을 표현한다든가, 요리를 하는 식으로 가족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요리하는 중국남성이 여성을 더 존중한다고 볼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미국사회에서 청소, 요리, 육아 등 여성이 하던 일을 남성이 해준다는 것은 여성을 존중한다는 사실과 관계없다. 미국남성은 재정, 이웃관계, 육아와 교육 등 굵직한 가정사를 아내와 함께 의논하는 것이 남편으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가정사와 관계가 없다. 두 부부 사이의 개인적인 감성일 뿐이다. 이것이 실은 미국남성이라기보다 영국,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독일북부, 스위스 등 청교도 문화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탈리아인들이 1900년대 초 청교도 문화가 짙은 미국 동부로 이주했을 때, 많은 이들이 피자집이나 올리브 오일 등 식당과 식품 장사를 했다. 장사가 이러하니, 아내나 딸 같은 여성과 함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성의 마초의식은 바깥일이나 집안일 어디에서든 발견되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이탈리아 남성이 만든 가족이었기에, 아내에게 부리는 어리광정도가 겉으로는 마초처럼 보였는지는 모른다. 정신분석을 하는 사람들은 이탈리아 남성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거꾸로 남성성을 드러내게 했다는 식으로 해석하지만, 근거 없는 소리다. 그렇다면 모성애 집착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영국인은 여성적인가? 정신분석이라는 것은 학문도 과학도 아닌, 단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는 명령일 뿐이다.

이탈리아 남성들은 가정사와 아내에 대한 애정을 명백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일도 잘한다. 돈도 많이 가져다주고 요리도 잘한다. 개인 홀로 가진 애정의 밀도가 남과 함께 하는 가정사의 밀도와 유사한 것이다. 그러하니 가정사가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다. 일단 부부가 되었으면 집은 마음의 요새가 된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은 다르다. 영미의 두 부부가 아무리 잉꼬처럼 금술이 좋다 해도 가정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집이 열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을 오고가고 각종 파티가 가정집에서 열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미인들에게 사적공간이란 혼자 있는 공간이지, 가정까지 그리 끌고 가지 않는다. 반면 이탈리아인에게 사적공간은 가정 그 자체다. 이탈리아 부부의 사랑이 식으면 가정사도 파탄난다.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이탈리아 부부는 가정을 지키면 애정도 다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집 떠난 남편, 아내를 기다려 준다. 이탈리아 가정은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그렇지 않다. 부부의 사랑이 식으면 이혼하고 이혼하면 가정사가 단지 정리될 뿐이다.

애정과 가정이 분리된 개인주의 영국과 미국의 정서적 배경을 가지고 현대 페미니즘이 출발했다. 두 남녀의 애정 속에 있는 “가정을 우리가 이끈다”가 아니라, 두 남녀의 애정 바깥에 있는 “가정에 내가 얶메인다”는 느낌은 현대 미국과 영국 여성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정을 바라보는 자세의 차이다. 이탈리아의 전기, 전신, 전화, 타자기, 베터리, 라디오, 엔진 등이 유럽과 미국의 상호교류에 의해 발명, 개발되어 갔던 반면,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대다수의 가정용품만은 영국과 미국이 단독으로 발명 개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피임약도 미국에서 발명했다. 여성들이 그만큼 찾았기 때문에 발명 된 것이다. 이탈리아와 달리, 영미 여성 소비자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가정사의 축소였다. 가정용품을 통하여 가정의 모든 일을 축소시킨 다음에 무언가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사를 축소시킨다는 것은 아시아나 이슬람, 그리고 예로 든 이탈리아 여성의 머릿속에서는 상상 불가한 일이었고 현재도 그런 편이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청교도 여성들이 시간이 흘러 결국 보여 주었던 보바리즘(집 나가고 싶다)이 이로써 탄생했다. 가정사가 축소되고 애정이 식어갈 무렵이면 유행처럼 등장했던 아내들의 욕망이었다. 가정을 통하여 애정을 구축하기 힘든 문화이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영미의 문화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런 시각은 가정중심의 이탈리아 남성을 마초로 보게 만든다. 아내를 가정에 종속시키려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가정을 소중히 하는 남성이 이상하게도 가부장적으로 보이고. 이런 남성을 비난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보바리즘을 정당화하려 노력하게 된다. 영미 여성들이 이탈리아 타입의 남성을 마초의 전형으로 본 이유는 자기들 스스로 이탈리아 남성들처럼 요리에 관심을 갖거나 가정문제로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그런 판단을 한 것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독립적으로 살면 타인에게 빌붙어 남을 괴롭히지 않도록 만든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 독립적인가가 중요한데, 이탈리아 같은 라틴계 여성들은 전 세계의 보통 여성들처럼 나와 가정 바깥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독립적이고자 했던 반면, 영국, 미국 동부, 네덜란드 등 앵글로색슨 출신의 여성들은 나를 제외한 가정으로부터 독립적이고자 했다. 가정을 중시하는 남성을 사회적 억압의 대표자로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런 편견은 미국의 경제,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뒤에 업고 세계 여성운동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침투했다. 여성운동은 자기가 살아가는 나라의 환경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인정되는 것이 옳다. 인류사에 매우 중요한 여성문제마저, 강대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끌려 갈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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