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뚝심 있는 리더쉽과 미래를 볼 줄 아는 식견으로 2002년 월드컵 성공유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및 경복궁 완전복원 완성, 민영방송 법안 통과 등 역사적 쾌거를 이루어 냈다’ - 인터뷰 중에서....

▲ 문화체육부 초대 이민섭 장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박복신 회장)아트홀에서, 대한민국 문화와 역사의 증인이신 리더 이민섭 초대 대한민국 문화체육부 장관을 만나보았다. 이곳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에서 뵙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그가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을 맡게 된 것은 이민섭 장관이 일찍이 뜻이 있어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기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장관의 소임을 감당하게 되는데, 그는 대한민국 제11대, 12대, 13대, 14대 국회의원(4선)을 지냈으며, 전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민섭 장관은 장관의 소임을 감당하는 동안 강한 반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소신 있는 리더쉽과 미래를 볼 줄 아는 식견과 통찰력으로 2002년 월드컵 성공유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및 경복궁 완전복원 완성, 민영방송 법안 통과 등 역사적 쾌거를 이루어 낸 것이다. 이런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의 문화 인생에 대해 들어 보았다.

이민섭(4선 의원)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의 인생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박복신 회장)에서 그랜드 개관식 때 축사를 맡은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대한민국 역사, 서울역사, 종로역사 등에 대해 강연하였다. 이날 참석한 내빈들이 모두 놀랐다. 왜냐하면 이민섭 초대 장관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날 그의 역사의식을 보면서, 축사로 나온 종로구청장은 그의 여사 의식에 대해 감탄을 한 일이 생각난다.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강원도 강촌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이후 지역을 대표하는 4선 국회의원을 보내면서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을 겸했다. 그는 꿈을 이룬 아주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국회의원이 되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이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선친께서 어려서부터 강원도에서 크게 사업을 하셨는데, 언변이 없으셔서 국회의원 출마를 못 했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 친구가 출마하게 되었다. 그래서 4번이나 그 친구분의 선거 사무장을 맡게 되셨다. 그래서 선거 경험을 하며, 재밌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결국 이민섭 초대문화부 장관은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했고, 졸업 후 신문사에 입사하며, 기자 활동을 통해 정치입문의 꿈을 구체화시켰다. 그러던 중, 1980년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다. 민주정의당에서 정치입문을 하게 되었고,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의 어린 시절 꿈은 현실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가 제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제14대 국회의원까지 4선을 지내는 영예를 안았다.

민영방송 개정법 통과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4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결코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 13대 국회의원 시절 문화공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는데, 1990년 방송개정법 개정을 두고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그 당시 민영방송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었다. 즉, KBS, MBC 외에 민간인이 운영방송을 더 만들자는 것이다.

민영방송 도입을 놓고 벌어진 여야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당시 문화공보위원장으로서 이 초대문화부 장관은 이 법을 통과시켰다. 통과시키는 과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당시 모습을 이민섭 초대문화부 장관은 이렇게 고백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정말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문화부 장관은 결국 여러 번 시도해서 통과시켰다. 그 당시 지역구에서의 평가는 여러 가지였지만, 잘 아는 사람들은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그 당시 야당의 반대로, 극심한 진통을 겪어야 했던, 민영방송설립통과 법, 이제 법이 통과된 후 민영방송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때. 법을 통과시킨 이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지금 생각은 어떨까? 이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지금도 그 당시 민영방송 설립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역사 앞에 추호도 부끄러움이나 빈축을 살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 소중한 자산으로 갖고 있습니다.”

▲ 인사아트프라자 그랜드 개관식 때.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이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런데 장관이 된 후, 첫 업무보고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바로 문화체육부 장관 직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쉽게 그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에는 이민섭 장관이 있었다.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사실, 그 당시 여론은 지금 총독부건물을 철거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차라리 새 박물관이 건립되거든 철거하자는 주장이 강했다. 서울대 교수를 포함한 일부에서는 또 한 찬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그 당시 반대 의견을 설득하기 위해 미군이 사용 중이던 용산공원 부지 확보와 새로운 박물관 건립을 동시에 진행시켰다.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의 이러한 노력에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끝나고 경복궁 건물도 새롭게 단장되었다.

경복궁 복원

이 초대문화부 장관은 “현재 경복궁 자리가 총독부 건물이었다. 건물을 헐고 뒤에다가 흥례문을 새로 만들고, 근정전과 강녕전, 교태전을 복원하였기 때문에 오늘의 경복궁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초대문화체육부 장관은 뚝심 있게, 계획을 진행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뚝심 때문에 오늘날 경복궁의 위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서울시민은 물론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도 이제 제대로 된 궁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을 때는 일본 학생들이 그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이제 일본인 그들도 한국의 진짜 모습을 담아가고 있다.

이 초대문화부 장관은 “당시 상당히 비판 여론이 있었다가 광화문까지 복원되는 것을 보니까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안 했으면 어떻게 할 뻔하였느냐? 너무 잘한 일이라고 여론이 바뀌었다. 우리 조선왕조 500년에 사직을 이어온 경복궁 전 궁이 다 보인다. 그 당시 총독부 건물이 있을 때에는 광화문 뒤에 총독부 건물만 보이고 그 외에는 다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선총독부가 헐리고 탁 트이니까 인왕산도 잘 보이고, 500년 동안 막혔던 체증이 풀리는 듯한 감정이다”라고 말했다.

▲ 인터뷰 중인 초대 이민섭 장관.

2002년 월드컵 개최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을 지내면서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던 일 중 하나가 바로 2002년 월드컵이었다. 1993년 장관 취임 후, 월드컵을 유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당시 그의 주장은 비난받았다.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그 당시 언론에선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일본은 4년 전부터, 월드컵 유치위원회를 구성해서 추진해오고 있는데, 이제 유치위원회를 구성해서 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고, 물 건너간 일이라며 비난했었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일본이 먼저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안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여기에 대해 확실한 전략을 갖고 있었다. 그는 월드컵의 기본 정신 중 축구를 통해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는 분단국인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해서 추진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일본보다 늦어서 단독 개최마저 어렵다면, 마지막에는 일본과 공동개최를 해서라도 월드컵을 기어이 우리가 유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한일 공동개최는 최후의 수단으로,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쳤던 것이다.

결국 전략의 승리였던 것이다. 만약 반대에 부딪혀 월드컵을 포기했다면, 우리에게 그런 꿈같은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반대했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오랫동안 연단, 훈련, 준비된 모습에서 나온 전략이 아닐는지.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은 “4선 의원을 지내면서 문화체육부 장관을 하다 보니까, 정치의 총결산을 문화체육부 장관직을 걸고 멋있게 해보자. 횟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배수진을 치고 일을 했다”고 말했다.

                                      대담: 본지 대표이사 이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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