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교회서 장례예배…예배당 안과 밖 가득 채운 추모객들 감사의 기도·찬송

현충원 추모식에 경향 각지에서 이천여명 참석… DJ 묘역에 합장

▲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장례 예배가 열리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장례 예배가 열렸다.

앞서 이 여사의 운구 행렬이 빈소가 있던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마치고 인근 창천교회에 도착하자 50년 가까이 믿음의 동행을 했던 교우들이 앞마당까지 나와 기다리며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였다. 예배당과 안마당에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온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영정을 든 손자 종대 씨의 뒤로 차남 홍업 씨와 3남 홍걸 씨를 중심으로 유족들이 따르고 창천교회 성가대가 찬송을 부르며 뒤를 따랐다. 감리교 신자였던 이 여사는 동교동으로 이사한 1960년대 초부터 창천교회에 다니며 권사, 장로를 역임하였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권노갑 고문, 한명숙 전 총리, 반기문 사무총장, 박지원 의원, 이해찬 대표와 정동영 대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얼마전 어머니를 여윈 유시민 이사장도 앞자리에 자리했다.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습니다. 한국현대사를 고난의 한복판을 가장 강인하게 헤쳐오신 분 "(이낙연 국무총리 조사), "감당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의 과정에서 인내와 혜안으로 국민의 어머니가 되었다." (신낙균 전 장관 조사)

오전 7시 30분부터 이희호 여사의 장례예배는 유족과 추모객들의 눈물과 흐느낌 속에서도 고인이 못다 이루신 통일의 꿈에 대해서 결의를 다지는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이낙연 총리는 조사에서 "정권교체 절반은 여사님 몫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을 마주하신 여사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더욱 채찍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교회에서 열린 故 이희호 여사 장례 예배에서 차남 김홍업씨, 3남 김홍걸씨가 예배에 참석한 내빈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서 있다.

유족과 각개 각층을 대표하는 참석자들이 차례로 영전에 헌화하는 것으로 예배는 7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김성재 장례집행위원장은 "갹별한 애도의 표시와 함께 장례절차가 잘 진행되도록 해준 문재인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하고, "조의문과 조화를 보내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후 교회를 떠난 운구 행렬은 이 여사가 1963년 김 전 대통령과 신혼살림을 차린 후 별세할 때까지 살았던 동교동 집을 들러 동작동 국립묘지로 향했다.

장례예식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정부 주관 '사회장 추모식'으로 이어졌다. 시민 2천여 명이 현충관 안팎에서 이 여사를 추모했다. 자리가 모자라 좁은 공간에서 선 채로 예식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다.

▲ 운구차가 현충관 식장 앞에 도착하였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여사님이 못 다 이룬 통일의 꿈을 우리 몫으로 삼아 기필코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황교안대표도 “여사의 뜻을 받들어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평화를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손학규 대표는 “한국 여성사의 선각자, 연합정치가 대한민국의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고 하고, 정동영 대표는 “최초 민주정부의 문을 연 원천은 여사님의 굳센 신념과 인간 사랑의 힘이다. 민주주의, 인권, 평등, 인간의 사랑의 씨앗을 가슴에 품겠다. ”고 하고,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한국 여성들에게 삶의 용기를 심어준 개척자이자 선각자,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한편에 서느라 고단하고 신산한 삶을 살았지만 용기와 미소를 잃지 않고. 소외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포근한 안식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다. 여사님 뜻을 받들어 평화, 인권, 민주주의의 길을 굳건히 이어 나가겠다”고 다짐하였다.

장하진 전 여성부장관은 “ 여성운동은 기본적인 인권운동이자 사회운동, 분단시대에 평화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여성들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없다.”며 1세대 여성지도자로서 이여사의 업적을 추모하였고, 재야를 대표하여 한국방송공사이사장 김상근 목사는 ‘교회당 찬 마루바닥에서 꼬박 날을 세고 서대문구치소 새벽송을 부르며 생사를 확인하던 고난의 시간을 회고하고, 이 여사께서 구속자들과 함께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망울을 피웠다“며 이 정신을 더욱 발전시켜 통일의 꽃망울을 틔우자고 추도하였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김덕룡 고문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하고,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과 헌신은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으로 나아가는 현 남북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김정은 위원장의 조전을 낭독하였고 추도식 말미에 생전의 영상이 방영되어 이여사의 마지막 육성이 동작동 국립묘지에 울려 퍼졌다.

현충원 내 김 전 대통령 묘역에서 이어진 이 여사의 안장식은 국방부 주관으로 유족들과 일부 장례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이해동 목사 집전으로 마지막 예배를 드린 후 국군의장대가 김 전 대통령 봉분 한쪽을 미리 헐어내 마련한 공간으로 이 여사의 관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유족과 장례위원회 고문 등 20여명이 한 명씩 관 위에 흙을 뿌리는 '허토'를 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인 건호 씨가 맨 마지막으로 흙을 얹었다. 의장대가 세 차례에 걸쳐 총 19번의 조총을 울렸다.

인원이 많아 미처 묘역으로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 200여명이 먼발치에서 안장식을 지켜봤다.

추모식이 있었던 현충관 앞에서도 시민 100여명이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 야외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묘역 상황을 끝까지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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