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영 장로

수년 전 다녀온 기독교 신앙의 진원지인 유럽성당들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체코의 프라하는 온 도시가 성당들의 위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곳곳의 대형 성당들은 옛 신앙의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아름다웠다.

헝가리의 성당들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규모가 정말 컸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던 중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이라는 성 스테판 성당에서 미사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얼마나 많은 교인이 미사에 참석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되고 보니 참석자는 백발의 신도 두 명뿐인 쓸쓸한 미사였다.

유럽의 교회와 성당은 모습은 화려하고 웅장하나 대부분의 교인이 이미 떠나고 없는 빈 둥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자유와 이성이 지배하는 인본주의적 신학이 휩쓸고 간 이곳에 믿음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부처의 모습이 새로이 등장했고, 검은 옷을 입은 이슬람 사람들의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독일의 한 세계적인 호텔 벽에는 온통 부처 그림이 깔려 있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웅장해서 더 쓸쓸해 보이는 성 스테판 성당을 빠져나오면서 우리나라의 형편은 어떤지 생각해보았다. 보수적인 신앙이 지배하던 시기의 미국 교회 선교사들이 신본주의 신학을 이 땅에 전했고, 우리는 그 신앙을 받아들여 뜨거운 신앙심으로 한국 교회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세월이 지나 미국의 신학이 자유 신학으로 변하고 신학교들도 인본주의 학자들의 무대가 되자, 변한 신학이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시작되고 장로교는 보수와 자유로 나뉘고 신학교도 마찬가지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초창기 목사님들은 보수 신학을 이미 배우신 분들이었고 연합체만 자유 신학 쪽으로 갔기에, 우리 신도들은 계속해서 신본주의 신앙에 흔들림 없이 곱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이 자유 신학을 배운 젊은 2세대 목사님들이 강단에 서고, 1세대 목사님들은 점점 은퇴를 하시니 신앙의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는 사람 중심의 신학이다. 그러나 이 신학은 이미 유럽에서 그 실체가 입증된 신학으로, 사신신학(the death of God theology)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도 우리 땅에서는 위력을 떨친다. 보수 신학이라고 자부하는 신학교에서조차 일부 인본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신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신학이 혼합되어 간다.

이 땅에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학과 열정을 가진 목회자가 나와서 한국 교회의 등불이 될 뿐 아니라 저물어 가는 기독 세계에 새로운 성령 운동을 일으키길 바란다. 영국의 웨슬리 목사님이나 칼빈과 같은 분이 이 땅에서 탄생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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