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노예 아닌 사람 냄새 나는 도시 공간

사랑 · 신뢰 기반 성숙한 스마트시티즌 역량 필요

요즘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수많은 매체에서 수신돼 오는 뉴스, 영화, 디지털콘텐츠 등을 스마트폰 하나로 불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스마트시티도 독자적인 운영체계 기반하에서 도시 내 여러 가지 기능을 통합 조절한다. 이런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생활방식을 바꾸어놓는다. 스마트시티 기술로 도래할 사회도 지금보다는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패턴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 사회가 물질만능, 권력만능, 출세만능 위주의 찌그러진 운동장 구조로 형성돼가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가 크다. 또한,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나고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갑론을박하거나 혹은 반목하다가 쉽게 헤어지는 각박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은 군자들의 사귐을 옥에 비유하고, 소인들의 사귐을 모래에 비유해 설명했다. 군자는 자고로 인간관계, 만남이 더해질 때마다 옥처럼 서로를 은은히 밝혀주어 서로를 빛내주는 비옥취사(比玉聚沙)의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소인은 만나면 만날수록 모래알처럼 섞이지 못하고 흩어지게 한다고 했다. 사회생활 하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화통하게 지내다가도 이득이 없으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어리석은 시티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사랑과 신뢰의 상징으로 유명한 스위스 용병이 오늘날까지 로마 교황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전통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민혁명군에 의해 포위됐을 때 궁전을 끝까지 지킨 것은 프랑스군이 아니라 스위스 용병들이었다. 자국 프랑스수비대 전원이 도망갔지만, 스위스 용병 700여 명은 남의 나라의 왕과 왕비를 위해 용맹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시민혁명군이 퇴각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스위스 용병은 계약 기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그 제의를 거절했다.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신용을 잃으면, 우리 후손이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죽음으로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사랑과 신뢰는 종이 한 장의 앞뒤처럼 따로 떼어 낼 수가 없다.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도 존재하고,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랑하면 신뢰는 더욱 깊어지고, 신뢰하면 오래도록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다. 문서로 된 약속보다 구두로 한 약속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남에 기품이 있고 은은한 비옥취사(比玉聚沙)의 메커니즘 원리를 확장 시켜 사랑과 신뢰 기반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서로를 인정하며 수시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책임감을 느끼고 해결해나가는 성숙한 스마트시티 시민(스마트시티즌)으로서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물질만능주의, 과학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스마트시티라면 차라리 아날로그 방식으로 도시를 운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얼굴을 한 스마트시티가 돼야 한다.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여도 인간의 근본적 심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스마트시티즌은 과학기술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고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 공간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