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소득세법은 8단계 과세표준(과표) 구간을 두고 6∼45%의 소득세율을 적용한다. 2020년 기준 근로소득세 과세 대상 1731만명 중 97%가 속한 과표 8800만원 이하 구간은 과표와 세율이 13년째 그대로다. 물가는 오르는데 세금 체계가 유지되면서 직장인들은 같은 급여를 받아도 세금을 점점 더 많이 내게 된다. 월급쟁이의 유리지갑을 털어 ‘소리 없는 증세’가 이뤄졌다는 불만이 빗발친다.

실제로 정부가 거둬들인 소득세 규모는 2008년 36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114조1000억원으로 3배 넘게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4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주로 급여생활자를 대상으로 경제 규모 증가에 비해 소득세를 과도하게 더 거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기획재정부에 근로소득세 개편 등을 건의하면서 물가·임금 상승에도 저세율 과표구간에 대한 조정이 없었던 만큼 이제라도 소득세 과표구간의 상향 조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에 사는 중산층 근로자 가구의 1분기 명목소득은 늘었지만 실질소득은 1년 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중산층의 실질소득 감소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월급에 포함되는 식대의 비과세 한도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리는 ‘밥값 지원법’을 대책이라고 내놓는다. 직장인들은 한숨만 내쉬는 실정이다.

정부가 15년 만에 소득세 과표와 세율을 전반적으로 손본다고 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수가 2013년 531만명에서 2019년 705만명으로 늘면서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36.8%에 달했다. 10명 중 4명은 근로소득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세 대상자 1인당 세 부담은 2013년 201만6000원에서 2019년 339만3000원으로 68.3%나 늘었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만 내고, 세금을 낼수록 더 내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면세자를 늘리지 않기 위해 현행 하위 과표구간을 유지하되 구간을 세분화하는 방안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물가 상승을 반영한 과표구간 상향 조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 원칙을 되새기면서 고물가에 시달리는 월급쟁이의 세 부담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덜어 줘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고통 분담이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