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과 관련해 지역 특성에 따라 2-4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승자 독식 선거 제도로 정치권 대립과 갈등이 증폭된다는 비판이 많다”며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했다. 지역구마다 국회의원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승패가 분명해 책임정치를 구현한다고 하지만, 승자 독식 구조여서 여야정당, 지지자 간 극단적 대립과 갈등을 키워왔다. 승자 독식의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제이지만 의원 소선거구제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소선거구제는 많은 국민의 의사가 사장되는 문제도 크다. 지난 2대 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민주당은 49.9%,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41.5%를 득표해 8.4 포인트 차이였지만 지역구 의석수는 163석 대 84석으로 두 배가량 차이가 났다. 이는 국민의 정확한 뜻이 아니다. 한지역구에서 여러 명의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는 군소 정당 난립 우려가 제기되지만 여야 간 죽기살기식 대결을 완화하고 사료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처럼 철저하게 양극단으로 갈라진 정치 현실에서는 도입의 득이 실보다 클 것이다. 선거규제 개편은 여야 합의로 공직선거법만 바꾸면 된다. 2,3,4,5공화국 때 중대선거구로 혼선을 치른 경우가 많았지만 1988년 총선에서 소선거구제를 재도입해 당시 지역 기반이 뚜렷한 ‘1노 3김’이 의석을 나눠 가졌고, 이후 지역 구도가 굳어진 측면이 있다.

내년 총선을 위한 선거법 개정 시한은 4월 10일이다. 국회의장은 2월 중순까지 개편안을 마련해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참석하는 전원회의에 부치겠다고 했다.

현역의원, 그중에서도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 의원들 입장이 관건이다. 소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개편하려면 지역구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지금 지역구에서 당선 안전권에 있다고 여기는 의원들이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기초의원 선거 때 30개 지역구에서 중대선거구를 시범 실시한 결과 민주당은 이득을 보기도 했다. 소선거구제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해 왔다. 극한 대립의 정치를 초대해 왔던 게 대표적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한 명만 당선되기 때문에 상대 정당과 후보를 최대한 악마화해 표를 얻지 못하게 하려고 애쓴다.

지지 기반이 큰 거대 정당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 양당 독점 구조가 반복된다.

민주당과 국민의 힘든 상대를 적으로 간주해 격돌하면서 의식을 나눠 갖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 왔다. 소선거구제에선 유권자의 표심이 비례적으로 반영되지도 못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 투표한 유권자 10명 중 4명(43. 9%) 가량이 던진 표는 말 이대로 ‘사표’가 됐다. 2,3위 득표자를 찍은 민심은 의회에서 대표되지 못한다. 해당 선거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각 영남과 호남에서 자신들의 득표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해묵은 지역주의가 해소되지 못한 데에도 이런 선거제도가 한몫해 왔다.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는 정당 내부도 망가뜨린다. 공천을 한 명만 받으니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다 보니 정치인들이 진영 논리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공천권에 영향을 미치는 쪽에 충성 경쟁을 벌인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윤’ 경쟁이 벌어지고 민주당에서 랜덤 편승 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배경이다. 정당 내 다양한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고, 신진 정치인의 진출은 가물에 콩나듯 한다.

내년 총선거구 확정시한이 석달여밖에 남지 않은 만큼 정치권은 속도를 내야 한다. 극단적 대립이라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없애고 협치를 복원하려면 선거제도 외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는 권력구조 개편도 필요하다. 대선에 이어 새정부 출범 내내 싸움만 해 온 여야는 이해득실을 내려놓고 정치개혁의 미래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나경택 논설고문​​​​​​​칭찬합시다 총재
나경택 논설고문
​​​​​​​ 칭찬합시다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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