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원인으로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장시간·불안정 노동, 과도한 주거비용과 사교육비, 성 불평등 등이 지목된다. 합계출산율 0.78은 저출생을 야기하는 한국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이런상태로 간다면 지구상에서 가장먼저 없어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란다.

지난 7월 31일 고용노동부는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한국사회에 필요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을 안할 수가 없다. ‘비용 절감’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답습한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그 결과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실효성 없이 오히려 저출생을 악화시키는 정책이 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3월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전제로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가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됐다. 지난 5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주문했고, 이후 정책은 빠르게 추진됐다.고용노동부는 비전문취업비자(E-9)에 가사분야 서비스 분야를 확대하고 이르면 올해 안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국내에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으며 최소 6개월 이상 서울시 가정에서 일하게 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자녀를 양육하는 가구의 실제 수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전국 성인 15~59세 2만2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하는 양육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해 일하는 시간과 돌봄 시간 중 어떤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한지도 조사했다. ‘양육자의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 유지하고 주로 서비스나 타인의 도움을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과 ‘양육자의 직접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주로 일하는 시간에 대폭 변화를 주는 지원을 하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일하는 시간 보장’보다 ‘자녀를 직접 돌보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성·연령·학력·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이민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이슈 리포트 <‘돌봄’의 관점에서 본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장주영 부연구위원)은 해당 조사를 인용하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라는 정책의 방향성이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늘려달라는 국민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수요가 있어도 일부 소수 계층에만 해당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월 200만원 이상을 주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가정은 현실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출생률 제고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알려졌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돌봄서비스를 시장에 맡기고 지불 능력이 있는 소수 가정에만 혜택(장기적으로는 혜택이라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을 주는 무책임하고 근시안적인 정책이다”라며 “대다수 다른 가정은 똑같은 시민이라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출생률을 높이고, 성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역행하는 제도다”라고 말했다.

해당 정책의 수요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되면서, 서울시가 지원하기로 한 1억5000만원 상당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초기 정착비용에 대한 타당성 논란도 이어진다.“비현실적이며 여러 가지 면에서 위험할 수 있는 정책이다. 입주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경우 그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성폭력과 학대, 폭력, 장시간 노동 등 인권침해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라며 “출퇴근을 한다면 그들의 거주지는 어떻게 제공할까.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주거비용을 시에서 일부라도 부담한다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중산층 가정에 풀타임 가사노동자를 파견하기 위한 비용을 서울시민이 부담해야 한다면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

노동시간 단축과 기업 책임 강화

저출생의 해법은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앞서 보건사회연구원 실태조사가 시사하듯,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과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저출생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저출생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장시간 노동이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조직이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면,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더 지고 있는 여성은 승진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경력단절이 되기 쉽다” “그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덜 일하는 불안정한 시간제 일자리밖에 재취업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여성은 자녀를 낳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그러면서 “남성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여성이 남성을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보편적 생계부양자 및 돌봄자 모델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게 하려면 당연히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노동시간 단축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의 부담과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돌봄의 핵심은 ‘비용’ 아닌 ‘관계’

또 다른 문제는 준비 없는 졸속 도입이다. 정부가 빠른 속도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해도 될 만큼 한국사회는 과연 충분히 준비돼 있을까. 한국사회가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외국인노동자들을 불합리한 차별과 착취 없이 동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앞선다.

이런데도 왜 하려는 걸까

정책 효과는 불투명한 반면, 부작용이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다각도에서 제기됨에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이 정부의 저출생 대책으로 급부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출생이 문제라고 다들 입을 모으지만, 정작 저출생 위기의 핵심인 ‘돌봄’에 대해서는 진지한 관심과 고민이 없는 정책 결정자들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학자들은 “정치인이나 고위직의 정책 결정권자 중에서 돌봄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는 지적이다. 19세기 경제학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를 따지는 논쟁이 있었을 때 모든 남성 경제학자들이 가사노동을 비경제활동, 주부를 잉여인구로 분류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아직도 성장과 안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저출생이나 기후변화를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라고 말했다.

합계출산율 0.78은 저출생을 야기하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과 같은 정책은 ‘성장’이나 ‘비용 절감’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답습한다. 문제의 원인을 문제의 해법으로 내세운 셈이다. 저출생을 야기한 사회의 기반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한국의 저출생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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