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자연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곳과 원하지 않는 것을 버릴 수 있는 곳의 대명사였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자연에서 화석연료를 채굴해 왔다. 태우고 남은 것은 대기로 내보냈다. 필요한 것은 가져오고, 더이상 유용하지 않은 것은 버리는, 획득과 투기(投棄)가 모두 가능한 장소가 자연이었다

획득과 투기의 자연관이 인류세를 낳았다. 기본적으로 인류세는 인간의 투기가 지구에 흔적을 남기는 시대다. 땅에는 수많은 닭뼈들이 묻히고, 바다에는 플라스틱이 섬을 이루고, 대기 중에는 인간 활동에 의해 과도하게 배출된 탄소가 흡수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시대다. 인류세의 흔적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훼손하는 것들로 돼 있다.

기후위기의 인류세에서 최우선의 과제는, 지금까지의 자연 개념에서 벗어나, 기본적으로 상호의존일 수 밖에 없는 인간-자연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의 심각한 기후변화는, 자연이 만든 기후라는 터전에 의지해 인간들이 살아왔다는 것을 뼈아프게 상기시키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기본적으로 상호의존의 동맹 관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동맹을 해칠 때 기록적 고온, 산불, 가뭄, 물난리, 치명적 질병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의 기후변화는 말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말은 정치와 경제가 떠받치는 대규모 국책 사업들 앞에서 무기력했다. 지역의 작은 개발 사업도 다르지 않았다. 생태계를 보전하자는 말에 반대할 이는 없지만, 보전을 위해서 개발의 이익을 포기하자는 주장은 힘이 없다. 과연 그동안 환경운동이 지킨 것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도 지킬 힘이 있을까란 의문도 없지 않다.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금 당장 몸에 유해하지 않더라도 축적된 투기가 지구상의 생명들을 고통과 질병으로 몰아가고 있는, 직면한 재앙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초근시안을 드러낸다. 기후재난에 치러야 할 거대한 비용 앞에서 국소적 이득만을 따지는 인간사회편의주의가 여전히 건재함을 말하고 있다. 목숨을 건 자연과의 동맹 훼손이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은 2030년 생물다양성 전략 목표를 법제화하는 자연복원법을 올 7월 통과시켰고 뉴질랜드등 일부 국가들은2008년부터 자연권 권리라는 법제화도 하고 들 있다.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전 지구적으로 어마어마한 기후변화 피해가 있었다. 엄청난 폭우로 인한 홍수는 눈앞에서 사람이 떠내려다가도 손을 쓸 수 없었고, 작은 불씨로 시작된 산불은 지구를 붉게 물들일 정도로 거침없이 타올랐다. 이제 기후변화 피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기에,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인 온실가스를 줄이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은 정확하고 과학적인 측정이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서는 정확한 배출량의 측정,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의 측정,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 플럭스의 측정. 그것이 단순한 통계이든 복잡한 관측이든 간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는 측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측정 기반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산업, 정책, 제도 등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정확하고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후테크를 통해 인간의 환경권리와 자연생태계의 자연권리가 상생공존하는 동맹관계를 복원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김상호
                 논설위원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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