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은행횡령 사건이 또 터졌다. 이번엔 BNK경남은행에서 50대 부장급 간부가 7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자금 562억 원을 빼돌렸다고 한다. 지난해 우리은행의 700억 원 대 역대급 횡령 사건이 드러난 지 1년여 만이다. 10년 넘게 한 부서에서 장기 근무한 직원이 서류를 위조해 대출을 받고 가족 계좌로 이첩한 수법부터 은행과 금융당국이 수년간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까지 판박이다. 경남은행에서 2007년부터 부동산 PF 업무를 맡아온 이 모 부장은 7년 전 PF 대출 상환금을 가족명의 계좌로 몰래 보내도 적발되지 않자 본격적으로 범죄 행각을 벌였다. 수시로 돌아온 대출금 78억 원을 가족 계좌 등으로 옮긴 것이다. 수법은 갈수록 대담해졌다. 아예 PF 대행사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대출금 326억 원을 가족 법인 계좌로 이체했다. 또 다른 PF 사업에서 상환된 돈을 본인이 담당하던 PF 대출을 갚는데 쓰라고 했다. 은행 내부통제에 구멍이 뚫린게 아니라 아예 시스템이 마비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돌 정도다.

황령 사실이 드러난 과정은 더 어이없다. 다른 저축은행 PF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올 4월 이 부장의 금융거래에서 수상한 점을 포착하고 정보조회를 요청할 때까지 은행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더군다나 은행은 자체 감사를 거쳐 횡령액이 78억 원이라고 금융감독원에 보고했다. 하지만 불과 10여일 만에 금감원은 484억 원의 횡령을 추가로 적발했다.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해 은폐한 게 아니라면 은행감사 시스템도 고장 난 셈이다. 금융당국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당국은 은행 횡령사고를 막겠다며 지난해 11월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같은 업무를 맡을 경우 사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순환근무와 명령 휴가 등을 통해 장기 근무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부장은 15년 넘게 PF 업무를 담당했고 은행은 지난해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당국의 지시를 무시한 은행도 황당하지만 이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금감원도 할 말이 없다. 최대 민간 은행인 KB 국민은행 직원들이 상장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7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가 금융감독원에 적발됐다. 이들은 증권 업무를 대행하면서 주가에 호재인 무상증자 정보를 미리 알고 본인 및 가족명의로 주식을 사서 돈을 벌었다. 금융의 본질은 신뢰다. 돈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을 고객에게 줘야 할 은행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고객 돈을 빼돌리고, 고객 비밀을 제 돈벌이에 이용하는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은행원 직업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작년 4월 우리은행직원이 기업 인수합병 계약금 600억여 원을 10년에 걸쳐 빼돌린 사건이 발생한 뒤 금감원이 장기근무자 순환 배치, 명령 개선방안을 내놓았지만 은행 현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 지금 많은 국민이 고금리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평균 연봉 1억 원 은행원들은 고금리 덕에 불어난 이자 이익으로 성과급 잔치, 명퇴 잔치를 벌여왔다. 지난해 코로나 거리두기가 끝났는데도 영업시간 복귀를 거부하면서 정년 65세 연장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까지 벌였다. 은행들은 외환위기 때 망할 뻔하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할 공적 자금 덕에 기사회생했다. 사회에 부채 의식을 갖고 무거운 책임감을 보여야 할 은행원들이 어느 직종보다 심한 도덕적 해이에 빠져 탐욕스러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최근 6년여 동안 금융사 임직원들의 횡령액은 220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허술한 내부통제와 뒷북 감독이 문제지만 바늘 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우는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한다. 회삿돈 2215억 원을 횡령한 오스템인플란트 전 직원이 1심 재판에서 징역 35년형을 선고받았다.

나경택 총재
나경택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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