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 ‘범죄 상응 양형 높여야“

최첨단기술 확보는 기업은 물론 한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고급인력 양성과 스카우트,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의 경우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조선 등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침해행위도 치열하다. 기술 및 인력 확보전쟁이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우리의 ‘최대 자산’인 고급 산업기술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경찰에 적발된 해외 기술유출 사건은 최근 10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찰은 2∼10월 9개월간 산업기술 유출 등 경제안보 위해 범죄를 특별단속 해 해외 기술 유출 21건을 포함한 총 146건을 송치했다. 또 우리나라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비율은 2021년 10.1%, 2022년 11.5%, 올해 14.4%로 꾸준히 늘어났다.

국가핵심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는 막대하다. 국가정보원이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2018∼2022년 최근 5년 동안 기술 유출로 한국 기업이 본 피해액은 25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단순히 국부(國富)가 빠져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술이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기정학(技政學) 시대에 첨단과학기술은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의 생존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법적 대비도 요청된다. 개별 유출 기술들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모호해 보다 분명한 규정과 엄중한 처벌이 요청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이란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기술로, 기술 수출이나 인수합병 시 정부 신고나 허가를 거쳐야 한다. 30나노미터 이하급 반도체와 리튬이온배터리·디스플레이·전기전자·자동차 등 12개 분야에 걸쳐 73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이에 비해 산업기술은 각 정부 부처가 지정하는 주요 기술로, 국가핵심기술에 비해 완화된 정부 통제가 적용된다. 지난해 말 기준 3942개가 산업기술로 지정돼 있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 및 관리하고 있는 기관이 기술 유출 방지 조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 또는 기술 유출이 발생했을 때 신고하지 않거나 기술보호 실태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한데 정부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기술 유출 피해를 방치했다는 비판도 있다. 2016년부터 2023년 7월까지 총 153건의 산업기술이 유출됐고, 그 중 국가핵심기술은 47건이다. 하지만 정부는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위법사항에 대해 단 한 번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고, 현장조사나 현장점검 결과 등 기본적인 통계조차도 집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기술유출 사건에 대한 법원의 양형 기준은 턱없이 낮은 편이어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9∼2022년 산업기술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법원 선고 445건 중 실형은 47건(10.6%)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에 대한 법정형은 '3년 이상 유기징역'이지만, 실제 법원의 기본 양형 기준은 ‘1년∼3년 6월’에 그치고 있다.

현재의 양형기준으로는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서 범죄 억제 효과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솜방망이 처벌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경제안보에 직결되는 만큼 법정형과 실제 선고 형량과의 괴리를 좁히고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양형기준이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갈수록 지능화되는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국가경제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범죄로서 처벌 강화와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 및 종합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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