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 의사 정원 확대…우리만 역류해서야

보건복지부가 2025학년도부터 적용할 의대 입학정원 증원 규모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의협)에 ‘최후통첩’ 공문을 최근 보냈다. 공문에는 지역·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인력 부족으로 의료 공백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고, 인구 고령화와 다양한 의료 수요 증가로 의사인력이 더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의대 정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복지부의 입장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이달 9일 제안한 ‘350명 증원’에 대해 국민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입장이다. 이에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 최대 3000명을 늘려 사실상 현재의 2배 가까운 수준까지 의대 입학정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3000명을 고수할 경우 의사들은 ‘의대정원 졸속확대 의료체계 붕괴’ ‘준비 안 된 의대증원 의학교육 훼손’ 등을 들어 ‘총파업’에 나설 것으로 우려된다. 의사들이 진료를 접고 거리로 나설 경우 의료 대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의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이 의협의 집단행동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노조가 작년 말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4%가 ‘필수진료과 의사들이 부족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47.4%는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2000명 이상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28.7%에 달하고 있음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반면 의협은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나 질적 수준으로 볼 때 지금 의사 수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어서 정부·보건의료노조와 의협 간 견해는 천양지차다. 의협은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 지나친 직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이 거세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의료계는 중증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 의료원들은 연봉 수억원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서울에는 문을 닫는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병원이 한둘이 아니다. 서울종합병원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의 필수의료 과목에서 전공의 정원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는 각각 3곳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곳도 나왔다.

감염병 유행 초기 공공병원‧병상이 없어 길거리에서 사망한 코로나19 환자들, 국내 최고 병원에서 근무 중 쓰러졌지만 수술 받지 못해 사망한 간호사,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환자들 모두 피해자들이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필수 의료인력을 필요한 지역에 배치해야 한다. 10%도 되지 않는 공공의료 환경에서 지금까지 수십 년간 지역 불균형과 진료과 쏠림현상을 지켜봤다. 누구든 차별 없이 필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한 안정적 제공은 명백히 국가 책임이다.

가뜩이나 무너지는 필수의료 분야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2006년 이후 의대 정원은 연간 3058명에 묶여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비해 현저히 낮다. 급격한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늘어 영국·독일·일본 등 선진국들도 의사 정원을 대폭 늘리고 있다. 우리만 세계적 흐름에 역류해선 국민건강은 급전직하 악화될 게 불 보듯 훤하다. 의사들은 ‘인술(仁術)’ 정신을 되돌아 볼 때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