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들, 백두혈통 영도체계에 반대 탈북행렬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공개

북한의 허상(虛像)이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 주민 10명 중 4명은 병원 진료 경험이 전혀 없고, 70% 이상이 식량 배급을 한 번도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로 붕괴한 배급제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 주민 가운데 ‘백두혈통 영도체계가 유지돼야 한다’고 인식한 비율은 29.4%에 그쳤다.

이 같은 내용은 통일부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북한이탈주민 6351명을 일대일로 심층면접 조사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공개됐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북한에서 배급제가 붕괴되고, 세습의 정당성에 불만을 가진 북한 주민이 늘어나고 있으며, 백두혈통 기반 영도체계에 대한 인식의 균열이 강화되고 있다는 뒷받침으로 주목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탈북 전(前) 백두혈통 영도체계 유지에 반대하는 인식을 가졌다’는 응답이 탈북시기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인 ‘2000년 이전’은 22.7%였지만 김정은 집권기인 ‘2016∼2020년’은 53.9%로 확대됐다. 북한에 거주할 때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정당하지 않다고 여겼다는 답변도 탈북시기에 따라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1∼2015년’ 47.9%에서 ‘2016∼2020년’ 56.3%로 상승했다. 북한 주민들이 체제 거부 정도가 심하기에 탈북 행렬은 갈수록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밝혔듯 탈북민 중 고위층이 많이 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개방되고 선진화된 외국 문물을 접한 외교관과 무역 계통 종사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200명 가까운 탈북민이 입국했고, 그중 한국으로 온 고위급 탈북민은 10명 정도라는 설명이다. 유엔과 미국 등의 강화된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난과 당국의 통제 강화 등으로 북한 엘리트층이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탈북자 증가는 북한 주민들의 동요를 부르고, 체제 균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뿐 아니디.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를 이끌 열쇠로 작용할 수 있다. 탈북 행렬이 이어지면 북한 체제의 경제적 기반이 약해지고 바깥세상 정보가 북한으로 유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탈북 단속은 물론 내부 통제를 강화하지만 도로(徒勞)에 그칠 게 불 보듯 훤하다. 2020년 12월 한국의 한류를 비롯한 모든 외부문화·종교,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활방식 등 북한 당국의 규범에 맞지 않는 행동, 사실상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없애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다. 또 2021년 9월에는 ‘청년교양보장법’을, 이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했다.

북한은 강력한 주민 통제와 핵·미사일에 의존하는 선군(先軍)정치, 정권 위협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으로는 체제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CVID) 핵 폐기를 실행하지 않은 채 과도한 군사비와 폐쇄적 체제로는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음을 바로 보아야 한다. 북한은 무엇보다 인도주의에 입각해 설과 추석은 물론 연중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성실히 호응하길 바란다. 혈육 간 만남엔 이념도 정치도 개입할 수 없는 인도주의만이 작용해야 한다.

이렇게 신뢰를 확인하고 이후 한반도 자연재해와 남북 간 보건의료·안전 체계 구축 등에 협력하는 토대 위에서 정치·군사 분야로 상호 돈독한 믿음을 쌓아가는 게 순서다. 그렇지 않고 호전성만 더한다면 국제적 고립은 깊어지고, 기아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하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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