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협의 47개가 모두 무죄로 신고된 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사법부 장악에 대한 정당한 판결”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점장으로 수사를 지휘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수사팀장을 맡았던 사실에 대해서는 “검찰의 역할을 충실히 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입장을 밝히는 게 먼저”라며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 장악 시도에 대해서는 “엉뚱한 정치적 해석을 펴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사법에 대한 신뢰는 민주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최후의 보류다. 사법부 수장이 재판 거래 등의 사법 농단을 해왔다면 그 사회는 단순한 정권 교체로 극복할 수 없는 정당성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수 실제로 재판 결과가 나와도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의 협의는 5년 만에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갈 수 없다. 책임은 한편으로는 사법부에 이른바 ‘적폐 청산’을 촉구한 문 전 대통령, 다른 한편으로는 애초 무리한 기소라는 법원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의견 전차와 인사 평가까지 직권 남용으로 몰아 기소를 강행한 검찰에 있다. 물론 사법부의 독립은 누구보다 사법부 스스로 지켜야 함에도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함으로써 정권과 검찰이 맞장구를 칠 수 있는 길을 터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책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법 농단 수사는 기본적으로 정치 권력과 검찰권력이 합세해 사법부를 희생양으로 삼아 각자의 이익을 충족시키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검찰의 수사 책임자들이 탄핵과 그 이후 정국의 우여곡절 끝에 현 대통령과 현 여당의 사실상 대표가 되면서 전 정권 현 정권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마당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이번 판결을 ‘법원의 안으로 굽은 판결’이라며 회피한다면 그것부터가 사법 신뢰 회복에 역행한다.

김명수 대법원에서 바뀌고 또 바뀐 판사들에 의해 판결이 내려졌다. 이번 사건 수사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건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사법 농단과 재판거래 희혹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적극 협조하겠다고”고 호응했다. 그 자리에는 문무일 검찰총장도 있었다.

입법·행정‧사법부의 삼권분립 원칙을 헌법정신으로 채택한 우리 허정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과 관련해 임종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 등에 유죄로 인정됐다. 하지만 재판 개입과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등 핵심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신고됐다.

임 전 차장을 마지막으로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 현직 법관 14명에 대한 1심 선고가 끝났는데 이 사건의 두 가지 핵심 협의는 모두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사실상 사건의 실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 1심 재판부도 “사법 농단 의혹 대부분은 실체가 사라진 채 행정처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지시를 한 혐의만 남게 됐다고 했다. 전 대법원장의 48개 혐의는 통짜로 무죄가 선고됐고 그 밑에서 사법행정 실무를 담당한 임 전 차창의 핵심 혐의도 무죄가 선고됐다.

사법부를 들쑤시고 5년가량 전직 고위 법관들을 형사 피고인으로 옭아 맨 결과가 이렇다. 이탄희, 이수진, 최기상 판사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됐고, 김형연 판사는 문재인 비서에 이어 법제처장까지 지냈다. 겉으론 법 개혁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법부 독립을 짓밟은 것이다. 이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죄없이 고통을 당했고, 법원도 망가졌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 한마디 없다. 너무나 무책임하고, 참으로 파렴치하다.

나경택 논설고문
나경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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