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가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해 1년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주 52시간제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에 인명보호 등을 위한 긴급대처와 업무량 대폭 증가, 연구개발(R&D)이 추가됐다. 제도 시행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준비가 미흡한 중소기업은 숨통이 트였다. 이번 조치는 그제 끝난 정기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된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이번 조치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계도기간 부여는 법을 위반해도 처벌만 미룬다는 의미다. 근로자가 주 52시간제 위반을 진정하면 고용노동부가 시정에 나서고 고소·고발하면 검찰에 송치된다. 특별연장근로도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경영상 이유’로 근로시간을 늘리려 해도 근로자 동의를 얻어 신청한 뒤 정부 인가를 받아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의 판단에 좌우되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도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정책을 포기했다”고 반발한다. 민주노총은 이재갑 노동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면서 위헌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사정을 도외시한 채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화를 키웠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노동연구원이 800개 중소제조업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 ‘주 52시간제 적용 때 임금이 감소할 것’이라는 응답이 업종별로 30∼61%에 달했다. 사업장 2곳 중 1곳(41∼61%)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사정이 이러니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고 노·사 갈등만 커진다. 다급해진 정부는 땜질식 처방에 기대는 일이 반복된다.

국회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어렵사리 합의돼 관련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3월 상정됐다. 이 안은 여야 간 정쟁 탓에 약 9개월간 표류하다 좌초하고 말았다. 주 52시간제가 안착하려면 정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개정이 아니라 국회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국회는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근로자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정부도 시장 혼란과 임금 감소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종합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계도기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유연 근무제를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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