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용현 목사

1542년 스위스 제네바에 전염병이 발생했다. 프랑스군 1만명이 그 지역을 통과한 직후의 일이었다.

로마 가톨릭과 유럽 왕실들의 핍박을 피해 유럽 전역에서 피난온 개신교인들도 이 전염병만큼은 피하지 못했다. 1년 동안 유행한 전염병으로 저명한 종교개혁자들과 많은 개신교인들이 죽었다.

이때 제네바 의회는 환자들을 돌볼 목사를 한명 요청했다. 그 결과 수백명의 목사 중 단 두명의 목사만 지원했다. 그 중 한명이 프랑스에서 피난 온 그 유명한 종교개혁가 칼뱅이었다. 그러나 의회는 그 두 명 외엔 아무도 지원하지 않자 칼뱅 외에 모든 목사들을 차출하기로 결의했다.

원래 한명만 필요하던 일에 모든 목사를 차출하기로 변경한것을 보면 당시 의회의 절망과 분노를 짐작할수 있다. 아마도 예수님이 10명의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시자 돌아와 감사 인사를 한 환자가 이방인 한명 뿐인 것을 아시고 개탄하셨을때의 심정이었으리라.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칼뱅이 소원대로 차출되었다면 그래서 혹여 감염되어 죽었더라면 인류 역사를 바꾼 종교개혁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성경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이 있었기에 칼뱅이 종교개혁의 주역이 될수 있었으리라.

칼뱅이 한평생 수천명씩 살해 당하는 핍박과 전염병에서 그렇게 행동할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칼뱅은 세네카 주석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공동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한다.“
기독교강요에서 “구원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면에는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 위해 자기 희생뿐 아니라 신자간의 상호 연대가 있어야 한다.”
로마서 주석에서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빚이 있으므로 사랑의 법에 따라 행동하는 사랑의 의무가 있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웃,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500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와 전세계는 코로나19의 공포에 떨고 있다. 평소 거들떠 보지 않던 마스크 한 장에 희비가 일어나고,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경제는 무너진 상태이며, 전세계 국가로부터 입국 거절과 기피 대상 국민으로 전락했으며, 아이들은 유치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방치되어 화재로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남탓하기에 바쁘다. 여기에 전염병을 확산시킨 신천지는 병을 막기는 커녕 비협조로 일관하여 내일 뉴스가 무서울 지경이다.

이런 때 한국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골방에 숨어 기도만 할 것인가? 하나님의 심판이나 사탄 운운하며 남 탓하는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아니면 믿음을 강조하며 예배 모임을 강행할 것인가?

지금은 한국 교회가 칼뱅과 같이 질병과 두려움, 외로움에 신음하는 이웃들 곁에 빨리 뛰어들어야한다. 침묵하거나 숨어있거나 남 탓만 한다면 한국교회가 이단이라 비난하는 신천지와 다를바 없을 것이다. 곳곳에서 칼뱅의 후예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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