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민 기자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보수정당을 찍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전향했다. 무슨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전향했다는 말이 우습긴 하지만 골수 좌파에서 우파로 마음을 바꾸기까지 28년이 걸렸다. 28년은 고3이던 1992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길 간절히 바라던 시점을 기준으로 했다. 투표권을 처음 행사하던 군 복무 시절부터 줄기차게 민주당을 찍어왔지만, 이번 선거부터는 보수정당을 찍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고 보수당이 내게 무얼 해줄 일은 없다. 다만 스스로 이념의 감옥에 갇혀 더는 현실을 왜곡할 수 없어서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대한민국은 혼란 그 자체였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비핵화 쇼, 대중국 굴종외교, 한미동맹 균열, 한일 외교갈등..... 끝없이 이어지는 악재에 국민은 지치고 허탈했다. 그러다가 우한 폐렴이 터져 나왔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용어가 통일됐지만, 초기에는 우한 폐렴이라 부르면서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에 경악했다. 정부는 중국에 문을 열어두면서 중국발 바이러스를 막겠다는 어이없는 대처를 했고, 신천지가 슈퍼전파자가 되면서 대한민국은 코로나바이러스에 집어 삼켜질 지경이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대패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물론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코로나19에 대처했고,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천만다행으로 지금은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언제 어디서 또다시 대량감염사태가 벌어질지 모르지만, 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진다면 크게 염려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보인다. 그렇더라도 190대 110으로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여러 언론에서 분석하듯이 이번 선거는 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야당이 너무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기자는 내심 미래통합당이 바닥을 치길 바랐다. 보수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빨갱이 사냥이나 하려 들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국민에게 정책의제를 제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보수의 이런 행태는 바닥을 치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었고, 국회의석수가 대폭 줄어야 찍소리 못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선거 이후 통합당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은 암담하기만 하다. 솔직히 110석도 너무 많다.

하지만 보수는 변해야 한다. 선거 몇 번 졌다고 해서 보수의 가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보수의 가치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인 한은 지켜져야 한다. 이번 선거 기간 내내 민주당이 승리하면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된다고 우려하던 목소리가 컸다. 그 우려 때문인지 개헌저지선이 무너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이제 진보의 폭주가 시작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태껏 해오던 대로 역주행을 계속할 것이고,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을 것이 확실하다.

지금이라도 보수는 환골탈태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이 ‘아내와 자식 빼곤 다 바꾸자’라는 정신으로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만들었다. 정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세계 일류 보수정당을 이제부터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찰해야 한다. 패배의 원인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긍정의 에너지를 집결시켜야 한다. 미래의 비전을 보여준다면 젊은이는 자연히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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