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동 논설위원

올 장마는 지루하고 잔혹하였다. 장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너무나 큰 생채기가 남아서 전국 각 지역마다 생채기를 치유하고 복구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복구작업을 다 마무리를 하지 못할 만큼 홍수가 남긴 상처는 크고 깊다.

그런 악마 같던 장마가 걷히자마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입추와 처서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는 조금 선선해졌으나 아직도 한낮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잔서(殘暑)의 기세가 등등하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이 조급한가 보다. 거대한 빌딩이 열을 받아 뜨거운 열기를 계속 내뿜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흡을 더욱 힘들게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쓰고 있는 마스크도 숨쉬기를 더욱 어렵게 한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들도 더위에 지친 듯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달린다. 한낮의 열기는 사람들의 숨을 콱콱 막히게 한다.

한낮 땡볕 더위가 도로의 아스팔트를 녹일 만큼 몹시도 무더운 토요일 오후였다. 시내버스 안의 승객들도 더위에 지쳐서 모두가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필자도 냉방된 버스 안에서 이마에 흐르는 식지 않은 땀을 손수건으로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침 토요일 오후여서 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정체돼 서 있었다. 그 가운데 유독 필자의 시선을 끄는 승용차가 한 대가 있었다. 차창 문을 모두 닫은 것으로 봐서 차내에 에어컨을 켜놓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앞의 운전석에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신사가 앉아 운전을 하고 있고 뒷좌석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팔순쯤 돼 보이는 할머니가 한 분 앉아 계셨다. 

그런데 근력(筋力)도 없고 힘도 없어 보이는 그 할머니가 뒷좌석에 앉아, 운전을 하는 중년 신사를 향해 연방 부채질을 해 주고 계신 것이 아닌가?! 짜증을 내거나 피로한 기색도 없이 조금도 쉬지 않고.

-뜨거운 날 운전하는 자식의 모습이 마냥 안타깝고 애틋하다는 표정으로- 부채질을 계속하고 있는 할머니의 행동으로 볼 때, 앞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중년 신사는 그 할머니의 아들인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차 안의 팔순 할머니는 옆 버스에 탄 많은 사람의 시선(視線)과 승용차 내에 켜놓은 에어컨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향해 열심히 부채질을 계속하였다. 

마치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가 잠이 든 필자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시며 부채질을 해 주셨듯이- 어머니의 포근한 정을 듬뿍 담은 사랑의 마음을 부채 바람에 가득 실어 자식에게 보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렇다. 연방 부채질하는 저 할머니가 바로 자식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한국 어머니의 모습이요, 자식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무조건적인 애정을 베푸는 숭고한 우리 어머니들의 전통적인 像이다. 

차 속의 할머니처럼 예전의 어머니들은 뜨겁고 식지 않는 부채사랑으로 오로지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베풀며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 내셨다. 그런 부모들의 부채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한 자식들이 오늘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주역(主役)들이 되었다.

그 주역을 길러낸 어머니들은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된 것이다. 부모님들의 자식들에 대한 부채사랑은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표상이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도 한국 어머니들의 자식들에 대한 부채사랑은 쉼없이 계속 되고 있다.

여름은 부채의 계절이다. 부모님의 가없는 사랑을 고맙게 생각하고 올여름이 다 가기 전에,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필수품으로 통하는 손선풍기 바람이라도 부모님께 쏘여 드린다면 부모님들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자식의 효도바람으로 여기시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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