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예전에 고향에 큰 수재가 난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어머니와 여동생, 나는 서울에서 거주 중이었고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고향 집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나의 고향인 경기도 연천 지역은 내가 어릴 때부터 강수량이 꽤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996년 여름,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사건이 있었는데 엄청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삼복더위의 저녁, 뉴스를 시청 중에 고향인 연천에 홍수가 나서 일부 주민이 대피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늘 상 그랬듯이 저지대는 비만 오면 집 안까지 물이차고 일부의 가구에 피해가 생기는 것이 다반사였던 터라 해마다 장마철에 일어나는 연례행사이겠거니 하면서 덤덤하게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더 비는 멈출 줄 몰랐고 연천의 강수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한탄강 교통이 통제되었다는 뉴스특보가 나왔다. 잠시 후에는 연천 댐이 붕괴되었고 마을이 통째로 물에 잠기고 있다는 불안한 소식이 계속 날아들었다.

비가 그쳤음에도 고향을 갈 수가 없었다. 철로 곳곳이 파괴되었고 도로 또한 유실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아버지께서 가끔 집으로 하시는 전화만 받고 안부를 물을 뿐이었다. 답답함을 참던 차에 다시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교통이 재개되었다. 고향으로 가까워져 올수록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 바깥의 풍경은 실로 처참했다. 뿌리째 뽑힌 나무, 지붕까지 파묻힌 집, 부서진 다리 등 이렇게까지 망가질 줄은 상상도 못 한 광경이었다. 이윽고 연천 역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면서 맞이한 도로변은 부서진 가재도 도구들로 산을 이루었고 하얀 연기를 뿜어 대는 방역차 소리 및 토사를 치우는 군인들로 바글바글했다.

집에 도착해보니 부모님께서 삼태기로 방안에서 밖으로 흙을 퍼 나르고 계셨다. 어머니는 걱정이 돼서 새벽에 먼저 오셨다고 한다. 커다란 스티로폼을 깔아놓은 곳이 임시 방이었고, 잠자리였다. 그나마 해가 떴다는 것이 일말의 위안거리였고, 옷가지의 경우 빨아도 흙물이 계속 나왔고 방안의 흙은 아무리 퍼내도 끝이 없었는데 그것도 고통이었지만 일일이 모두 닦아 내고 말려야 했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어머니께서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3일을 청소하고 나서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 TV와 전기제품은 인근 대리점에서 무료로 수리를 해주었고, 젖은 이불, 장롱, 흙 부대 등을 바깥에 내놓으면 군 장병들이 치워주었다. 쌀과 라면, 세면용품, 수건, 이불 등을 군청에서 구호 물품으로 나누어 주어 요기도 할 수 있었고 바깥에서라도 잠시 짬을 내어 눈을 붙일 수가 있었다. 홍수재해가 나기 전의 고향 집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무척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를 도와줄 슈퍼맨이 가까이 있었다. 소방서에서 물탱크차를 가지고 나와 집 집마다 빨래할 물, 집을 닦아 낼 물을 공급 해주어 청소할 수 있었고, 몸도 닦을 수 있었다. 수도가 파괴된 집들이 많았고 정수장 시설도 망가져 물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하고 절실한 터였기 때문이다. 또,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 주며 집 안 청소까지 도와준 덕분에 빠르게 복구할 수 있었음은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그때의 사건으로 여실히 느낀 점이 있다. 우리가 평소 알고 있으면서도 무심결에 잊고 있는 것,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재난 대비는 아무리 준비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것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화재, 수해, 산사태, 지진, 해상사고, 전염병 등에 한 대비는 매일 준비하고 강조해야 한다.

특히 화재 대피 훈련이나 지진, 수해 등 재난을 대비한 훈련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적극적이고 완벽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소화기 사용법, 화재 대피, 지진 대피 훈련을 어린이집,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형식적이 아닌 실제를 방불케 하는 반복 훈련만이 비상시에 우리의 생명을 지켜 줄 것이다. 또한, 자연 재해를 대비, 수시로 집의 상태를 점검하고 조그마한 틈으로 재난이 스며들지 않도록 안전에 늘 최우선을 두어야 하겠다.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해마다 소중한 인명들이 생명을 잃는다. 사고는 우리의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결국,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이다. 안전을 확보하는 것만이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며 우리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있다. 안전한 나라, 안전한 도시, 안전한 가정을 위해서라면 안전에 대한 교육이든 조치든 그 어떤 것도 지나침이 없다.

장마로 인해 무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전국의 수해 피해에 이어 태풍이 오고 아직 태풍이 남아 있다고 하니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하겠다. 산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숭고하고도 거룩한 일이다. 힘들고 지치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도 스스로를 위해 참고 참아내고 살아야 하는 것, 원하지 않는 천재지변이라도 만나면 자연의 힘에 맞설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한없이 깨닫는 시간이지만 기나긴 장마철, 수해를 입은 이웃들에게, 국민에게 힘내시고 다시 일어서자고 용기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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