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요즘은 음주문화가 많이 개선되어 회사에서 술을 강권하는 상사는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회식만 있었다 하면 폭탄주를 돌리는 상사들 때문에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폭탄주를 돌리며 폭탄 사를 강요하고, 2인 1조로 러브 샷을 시키기도 하고, 순번대로 폭탄은 계속 돌아갔다. 또, 다 마셨다는 표시로 머리 위에서 맥주잔을 흔들게 하여 유리잔을 부닥치면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도 안 들어가고 놀아줄 사람도 없는지 그런 상사들이 많이 있어 뒤에서 욕도 많이 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지금 세상에 그런 행위를 하면 꼰대라는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칫 잘못하면 갑질로 신고를 당하는 세상이니 음주문화는 많이 개선됐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다. 한 번은 회식만 했다 하면 이 자리 저 자리를 돌아다니며 직원에게 술을 강권하는 상사가 있었다. 술을 싫어하거나 못 마시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강제로 마시게 하여, 나를 비롯한 비주류는 회식 날만 되면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좋아하지 않는 술을 억지로 마셔야 했기에 말이 회식이지 고통스럽게 벌을 받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상사가 술을 워낙 좋아했기에 공식적인 회식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으로도 수시로 불려가야 했는데 어느 날 저녁 회식 자리에서 과감하게 항의를 하였다. “나는 술은 마시지 않고 흡연은 하니 흡연 회식도 해야 한다. 회식에서 술 못 마시는 사람도 억지로 마셔야 하니 담배 못 피는 사람도 강제로 피워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니 초과근무수당을 달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계속 어깃장을 놓았다.

효과가 있었는지 그 후에는 공식적인 회식 자리에서 술 마시기 싫은 사람은 대신 물을 마시라고 하고, 음료수가 허락되었으며, 비공식 음주 자리에는 나를 비롯한 비주류파들은 부르지 않았는데 싫은 술자리를 피할 수 있는 장점도 분명히 있었으나 다른 것으로 힘이 들었다. 업무에 트집을 잡고 결재를 안 해준다던 지 계속 지적을 하면서 결재 서류를 반려한다든지 하는 통에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한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일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아직까지도 문제는 남아있다. 일만 열심히 하면 될 것인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굳이 끊임없이 자신의 라인을 형성하려고 하는 사람, 승진에 눈이 어두워 고속성장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 업무는 뒷전이고 대충 일을 때우려는 사람, 구닥다리 아날로그 개념을 탑재하고 '나 때는 이랬다'를 외치는 지시일변도의 상사, 땡 울리면 출근하고 땡 치면 칼퇴근하면서 일이 많다고 투덜거리며, 해야 할 업무는 해놓지 않는 부끄러움이 없는 책임감 없는 요즘 친구들 등 다양하게 일이 많다고 그만두거나 그만두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생각보다 많다. 세대 간의 차이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대충해 놓은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다시 시키면서 미안해하지 않는 내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하고 갓 입사한 직원에게 말조심하면서 아주 부드럽게 훈계해야 하는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지시는 계속 내려오는데 업무시간 끝났다고 집에 가는 땡 퇴근 족의 뒷모습이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는 모습으로 비춰져 나를 슬프게 하고 타인에게는 자기만 안다고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말하면서 자가 자신이 더 이기적인 것을 모르는 동료가 나를 슬프게 한다.

재미있고 활기찬 직장문화는 어떤 것일까? 세대 간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를 줄이려는 거리 좁힘과 상호이해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비생산적인 야근은 줄이고 밀레니엄 세대에 맞는 임팩트 있는 업무 방식이 필요하고, 젊은 사람의 사고방식을 전부는 이해 못 하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받아들일 마음가짐도 필요하고, 반면에 요즘 세대도 너무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고 방어할 것이 아니라 애사심, 소속감, 연장자와 선배에 대한 예우와 존중이 필요할 것이다. 회식을 많이 하고, 월급을 많이 주어야만 좋은 직장은 아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와 서로 화합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직장이 좋은 직장이라고 판단이 된다.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이라는 뜻을 '워라밸' 이라고도 표기한다. 그렇다. 최근 구직자나 이직 희망자들은 회사의 ‘워라밸’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지원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워라밸’이 진짜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게 작용하는 요즘은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지고 부족한 것을 요구하는 진정한 ‘워라밸’의 의미가 필요한 시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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