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건 그윽한 커피 향이 짙게 퍼지는 정열의 나라, 세계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카사노바의 삼바리듬에 거리를 수놓는 예술적인 전라 춤, 세계 제일의 축구를 자랑하는 선수들, 아마존 열대기후 밀림 속에 살아가는 120족의 인디오 족속들 같은 말들이다. 우리와는 지구 정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에서 한의학을 공부해 포르투갈어로 논문을 쓴 사람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효성한의원 김대웅 원장은 초등학교 1학년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브라질에 이민 가서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이민 1.5세대이다. 김 원장이 브라질에 이민 가던 1970년 당시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개발도상국이었다.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지금의 조국(祖國) 대한민국에서 김 원장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또 다른 제3의 인생을 설계를 해 나가고 있다.

▲ 브라질 월드컵 축구응원

한국인의 정체성 지키고자 고등학교와 군대를 조국에서 나와

김대웅 원장은 1970년 부모님을 따라 멀고 먼 브라질에 이민 가야만 했다. 이때 김 원장의 나이는 국민학교 1학년. 하지만 4형제 중 한 사람은 한국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모친의 뜻에 따라 고국으로 향하지만, 다시 돌아가라는 국가의 명령으로 일본에서 체류하다가 브라질로 돌아간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국에서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국, 김 원장은 부산에 있는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추고자 스스로 자원입대하여 30개월15일을 복무하고 원주 국군병원(그 당시 51후송병원)에서 병장으로 제대한다.

▲ 김대웅 원장이 아마존 인디오들과 포즈를 취했다.

이후 김 원장은 브라질 ETOSP라는 침구학교에서 침구학(鍼灸學) 전공하여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기경팔맥’(Vqsos Maravilhosos)이라는 논문을 포르투갈어로 발표한다. 이어 그는 브라질 한인의료복지원에서 28년간 남미 국가들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최초로 브라질 한국총영사관 ‘장미의 회관’ 앞에서 의료인들과 직장인들에게 동의보감과 한국의 역사를 가르쳐 역사의식을 고취 시켰다. 더 나아가 김 원장은 브라질 입법부, 시의회에서 ‘침구의 날(Dia dos Acupuntura)’을 정해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한의학을 알리기도 했다. 더불어 남미 국가를 다니며 재외동포들과 남미 정부 요인들을 치료했다. 더욱이 대한민국 지도자들 특히 김황식 국무총리의 의전 치료를 담당했다.

▲ 김대웅 원장이 아마존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아마존 오지를 찾아가 인술 베풀어

김대웅 원장은 “한의사가 돼서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어렵고 힘든 사람은 아마존 밀림에 있는 인디오들이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2008년 아마존 선교사의 지원 요청으로 브라질 한인의사협회 회장 서주일, 한의사 김상철, 한의사 김대웅, 민주평통남미동부협회장 송인호, 부회장 고우석, 간사 김대기, 한인회 부회장 곽영의와 함께 3월 24일부터 4월 2일까지 외지인들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인류의 허파인 아마존 적도지역(산타이사벨) 검은강 하류에 사는 인디오 부락에 의료봉사 차원에서 다녀오기도 했다.

김대웅 원장이 의사로서만 활동한 건 아니다.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브라질협의회 자문위원을 5번 연임하면서 민간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2013년 민주평통 시무식 자리에서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의장상인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기도 했다.

▲ 한국 브라질 우정의 밤

또한, 2016년엔 브라질 군경찰사령부 창립 185주년 기념행사에 한인 단체들이 참여하도록 주선해서 한국과 브라질의 우정을 쌓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쁘라싸 다꼬로네올 군경찰청이 상파울로 한인타운 지역에 있는 만큼, 한인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호해 준 군경찰에 감사하는 의미로 군경찰 자문위원인 김대웅 원장이 한인들의 참여를 추진해 성사된 일이었다. 김 원장은 “한·브 우정의 밤 행사를 통해 브라질 현지인들과 군경찰, 그리고 우리 교민들이 더욱 더 하나 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 김대웅 원장이 삼바축제 행렬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삼바 카니발에서 한복에 태극기 들고 행렬에 나서

김대웅 원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2012년 브라질 삼바 카니발에 참여한 일이다. 그는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한국인이 백의민족임을 알리기 위해 하얀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3미터짜리 대형 태극기를 들고 퍼레이드 행렬에 첫 주자로 나섰다. 세계 158개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을 알리는 쾌거”라고 말한다. 김 원장은 그해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김 원장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미의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면서 한국의 사회복지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는 현재 사회복지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한국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브라질 군경 총사령관으로부터 감사장을 받는 김대웅 원장

이제는 사회복지학 교수로 활동

1970년 무관인 아버지를 따라 브라질에 이민 간 김대웅 원장은 한의사를 넘어 사회복지학자로 거듭나 남미와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현 브라질한인회 한브대외협력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몹시 기대된다. 1963년 2월 12일은 제1차 영농이민자들이 브라질 산토스항에 도착한 날이다. 그로부터 57년이 흐른 지금 김대웅 원장은 이민자 사회에서 우뚝 섰을 뿐 아니라 남미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사로 성장했다. 그가 브라질에서뿐만 아니 남미, 더 나아가 세계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여주길 바란다.

▲ 새한일보 신유술 발행인으로부터 새한일보 브라질 회장으로 임명받은 김대웅 원장

한편 김대웅 원장은 새한일보 창간 17주년 기념식에서 “2020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대상”을 수여한 바 있다. 또한 김 원장은 새한일보 브라질 회장으로 임명받아 남미에서 언론인으로서 활동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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