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이 논설고문

닷새간의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10월1일이 추석 명절이고 국군의 날이기도 하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주먹 악수를 하며 거리 두기를 하는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우울하고 답답한 명절을 보냈다.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지도 못했고, 고향을 찾아 성묘하고 부모님과 형제자매 온 가족이 모이지도 못했다. 귀향도 절제하고 자제가 요구되는 한가위였다.

추석 전에는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씨가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후 북한의 총격을 받고 사살되어 시신이 소각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정부와 군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고 사살된 공무원의 고등학생 아들이 대통령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고, 유족들은 탈북누명을 쓴 고인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이 편지를 갖고 유엔북한인권사무소를 찾아가 ‘유엔차원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다. 대통령은 ‘나도 마음이 아프다’며 해경의 수색결과를 기다려보자고 위로했으나 이 사건 최초 서면보고를 받고 14시간의 무대처 행적에는 언급이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이 2억원대 요트 구입을 위해 미국으로 여행을 가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추석 고향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당부에도 일부 정부의 고위직들은 고향을 찾아 명절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석 다음 날 코로나 확정판결을 받고 월터 리드 군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끔직한 소식이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겨 둔 시점에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를 추격하기 바쁜 상황에서 선거운동에 차질을 빚으면서 재선가도에 최대 악재가 돌출했고 국정 운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사흘만에 퇴원을 강행했고 “코로나를 두려워말라 이것이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지 말라”고 트위터에 쓰고, 떠나는 헬리콥터를 향해 엄지척을 하며 경례하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우리 민초들은 집에 틀어박혀 그래도 비대면 영상이지만 나훈아 콘서트에 답답한 코로나스트레스를 날려 보냈다. 2시간 반에 걸친 고향, 사랑, 인생 등의 테마별 힛트곡과 신곡을 선보이며 70대 청춘 가수의 열정에 빠져들었다. 그는 콘서트 초반에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같은 공연을 태어나서 처음 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별의별 꼴을 다 보고 살고 있습니다. 대형 쇼를 하면서 눈도 쳐다보고 손도 잡아보고 해야 하는데 이거 정말 힘드네요.” 라며 코로나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그의 힛트곡인 ‘잡초’를 부를 때는 우리와 같은 처지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열화 같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러나 잡초들은 짓밟히고 억눌려도 끈질기게 다시 일어난다. 잡초들의 생명력은 민초들의 힘과 같다. 나는 고향 선산 옆에 조그만 밭을 일구어 고구마 농사를 지어보았다. 심어놓고 가끔 가보면 ‘바랭이’라는 잡초가 무섭게 고구마 순을 덮치며 숨통을 조이는지 고구마는 비실비실하더니 손가락 같은 조그만 고구마를 만들었을 뿐이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고 세 번이나 되풀이 하소연할 때는 코로나 스트레스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우리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기에 환호하게 된다.

특히 그가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할 때는 폭발력을 일으키며 열광했다. 공무원이 총살을 당해 시신까지 태워졌다는데 김정은의 사과를 ‘각별하다’라고 평가하고,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할 때 속을 태우던 국민들의 서글픈 마음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리라.

10월 3일 개천절을 기해 보수단체들의 광화문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버스 300대로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 광장까지 차벽을 만들어 집회를 완전히 원천봉쇄해 ‘재인산성’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코로나 방역을 한다며 오히려 정부는 추석연휴기간 서울대공원과 고궁 등 공공시설을 개방했고, 차량과 인파가 많이 몰렸다는데 방역이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성경 누가복음(19:28~40)에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라는 성구가 있다. 돌은 역사일 수도 있겠고 폭력일 수도 있겠다. 광화문의 산성은 코로나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보다는 군중의 비판하는 외침을 듣기 싫어하는 살아있는 권력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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