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어떤 일에 임하든 일정 궤도에 오르면 그 일에 대해 일종의 숙련 효과를 가져오기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자신감을 갖는 것은 추진력이 생긴다는 뜻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과 상식이 늘어난다. 똑똑해진다는 뜻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타인과의 대화에서 또는 글로 표현하는 문서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오래 경험 할수록 임기응변에 능하다든가 경험이 많기에 비슷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좋다. 그래서 옛말에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이라도 어른 들의 말씀을 존중하고 집안 대소사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부모님의 의견을 듣는다.

그러나 자신감이 너무 지나쳐서 남의 말이 안 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편협한 시각에서 오거나 인성이 결여되었거나 자기 과시를 위한  자신감이라면, 그 자신감은 독이다.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자신감은 허장성세일 뿐이며, 쓸데없이 지나친 자신감은 자만이 된다.

자만은 겸손을 모르는 데서 온다. 겸손을 모르는 것은 스스로 겸손해야 함을 알면서도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고 싶어서, 자신이 뛰어나고 대단하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알리고 싶은 욕구불만에서 온다. 즉, 바로 눈 앞에 있는 겸손을 오지 못하도록 내둘러 쫒아내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뛰어난데 왜 날 모르지?  너희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올려다 봐야 해!" 이런 유형은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드러내고 자랑하기를 즐겨하며 과시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독선이나 오만으로 똘똘 뭉쳐서 자꾸 상대를 가르치려 든다. 자신의 뛰어남을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관련이 있건 없건  요즘 유행하는 친일파나 토착왜구 급으로 격을 낮춘다.

과도한 자만은 결국 스스로를 망친다. 내가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날 것이며 나보다 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없을 것인가 허장성세와 자만의 결합은 자신의 부끄러움이며 결국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꼭 남 탓을 한다. 자기 반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뛰어난데 어떤 놈 때문에, 나는 훌륭한데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은 좋은데 독자들의 수준 때문에,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런 사람 들의 특징은 타인의 실수에 대해 상대방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바로 직격타를 날리면서도 자신의 말 실수나 과격한 언어사용 등에  대해서는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이 받는 상처는 상관없고 한 마디의 반대는 용납을 못하니  안하무인도 이런 안하무인이 없고 절대 남 잘되는 꼴을 못 본다. 세상의 중심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모두 자기를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해야 하며 자신이 그 속에서 중심이 되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솔직함에서 나오고 솔직함은 가슴에서 나온다. 가슴 자체에 남들에게  줄 사랑이 들어있지 않으니 어찌 받을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고 스스로 부끄러운 점을 고치도록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해야 한다. 자신감과 자만은 분명히 다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이해하나 열과 성을 다해 이루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사람들 모두가 어찌 최우수상만 있을까, 장려상을 탈 때도 있고 입선도 못할 때가 부지기수이다. 

자신의 자만심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최우수상보다 넓고 예쁜 마음으로 땀 흘리며 노력하는 입선이 더 훌륭해 보인다. 잘난  자만심보다 최선을 다하는 자신감을 갖고 세상을 살고 싶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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