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의 한명으로서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크로아티아계 혼혈로 태어나 16세에 프로팀에 입단하여 데뷔하고 21세에 보카 주니어스 입단을 통해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하고 FC 바르셀로나 통해 유럽에 진출하여 38골을 넣은 바 있다.

골절상을 당해 코카인에 의지하게 되었도 1984년 스페인 국왕컵 결승에서 패싸움의 주동자로 몰려 팀에서 강퇴당하는 수모를 당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우승경험이 한 차례도 없는 SSC 나폴리로 이적하여 시즌 11위에 머물렀던 클럽을 입단한 해 8위, 그 다음 시즌에는 3위, 1987년 최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하여 아르헨티나와 나폴리에서 ‘신’으로 등극하였다.

1989년 UEFA컵 우승을 한데 이어 유럽 챔피언 AC 밀란을 꺽고 ‘세리에A 우승을 통해 축구의 지존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1992년 코카인복용사실이 드러나 구단으로’부터 15개월 동안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고, 1994년, 34세에 미국 월드컵 본선 조별 예선리그 도핑테스트에서 약물복용으로 귀국 조치되고 아르헨티나는 8강진출에 실패하여 선수생활을 접게 되었다.

이후 축구감독생활을 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코카인 중독으로 사경을 헤매다 2005년 위 절제 수술을 받아 121kg의 몸무게를 50kg 감량한 바 있고 2020년 11월 3일 뇌수술을 한 후 11일 퇴원해 회복중 24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두딸, 의절한 아들과 8살아들을 남기고 6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국가대표로서 FIFA U-20 월드컵과 FIFA 월드컵 두 대회 모두 최우수 선수 상을 받은 유일한 선수이다. 아리고 사키는 "펠레가 여러차례 월드컵 제패를 이룩함과 동시에 축구의 범대중화를 이끌며 축구계에 첫번째 혁명을, 요한 크라이프가 토탈풋볼로서 전술적인 혁신을 일으키며 두번째 혁명을, 지단이 각 대륙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아트풋볼로서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보이며 세번째 혁명을 일으켰다면 마라도나는 경기장에 선 그 자체가 혁명이었다."라는 찬사를 보낸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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