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손님은 까뮈가 1950년대 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프랑스 정부군과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사이에 벌어진 알제리 전쟁 때 쓴 작품이다. 까뮈는 이 작품을 통해 인종적, 정치적인 갈등상황을 그렸다. 프랑스 이민자로서 알제리 태생인 까뮈는 알제리는 아랍인의 국가가 아닌 유럽계, 아랍계, 아프리카가 모여 사는 지역일 뿐이었다. 그런데 알제리 전쟁이 시작되자 프랑스는 우파와 좌파로 나뉘어 까뮈에게 선택을 강요하였고,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은 계속 테러를 저질렀다. 1956년 까뮈는 민간인 휴전을 위한 호소를 발표하고 죄 없는 인간을 학살로부터 구하자고 발표하고 식민주의와 새로운 민족국가를 반대하고 연방제를 주장하였으나 양쪽 모두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사하라사막의 고원지대에 사는 지식인 교사 다뤼(Daru)에게 어느 날 헌병이 한 명의 살인 용의자 아랍인을 끌고 찾아온다. 헌병은 다뤼에게 이 아랍인을 다른 고원에 있는 도시의 경찰서로 인도해줄 것을 명령하고 돌아간다. 다뤼는 사촌을 죽인 이 아랍인과 하룻밤을 지내며 그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고 다음날 그를 데리고 학교를 나선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도망갈 수 있는 길과 한쪽으로는 경찰서로 가는 갈림길에서 그에게 선택하라고 하며 1,000프랑을 주고 그를 놓아 준다. 그리고 한참 돌아서서 걸어오는 다뤼는 다시 되돌아가 경찰서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아랍인을 발견한다.

마치 그와 한통속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어느 면에서는 그를 거절해 돌려보낸 것일 수도 있다. 아랍인의 선택은 인간의 도덕성이었다. 다뤼가 선택권을 준 것은 도망가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에 오히려 아랍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선택을 스스로 한다. 다뤼는 무책임하고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할 뿐이다.

교실로 돌아온 그의 등 뒤 흑판 위에 '너는 우리 형제를 넘겨주었다. 그 대가를 치르리라.'라는 글이 써있었다. 바로 증오와 복수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뤼는 하늘과 고원과 그리고 저 너머 바다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보이지 않는 땅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 광막한 고장에서 그는 혼자였다.

그 아랍인은 사촌을 죽였는데, 다뤼는 그 사람을 도와 주어 죽게 생겼다. 바로 부조리다.  나의 생각만으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성적인 세상에서 비이성적인 상황은 언제나 존재하고 원치 않는 상황이 불쑥 찾아온 손님처럼 삶에 끼어들게 된다. 그때 우리는 주어진 양면성과 선택의 상황에서 당황할 수 밖에 없고 인간은 늘 그런 갈등의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약한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다.

2021년이 밝았다. 우리는 올해도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코로나19와도 싸워 이겨내야 하고, 망가진 경제도 일으켜 세워야 하고, 치솟을 때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도 잡아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분열해서도 안 되고 서로 싸워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2021년을 우리 국민 화합의 해로 만들자. 코로나를 딛고 다시 한번 일어서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