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이 논설고문

해마다 연말이면 교수신문이 주관해 교수회의에서 선정 발표하는 사자성어가 흥미롭다. 한 해를 돌아본 교수들이 고전 문구 중에서 그해의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해 그해의 사회상을 더듬어 보게 만든다. 2020년은 아시타비(我是他非)로 결정 발표했다. 조국 사태 때는 ‘조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퍼지기도 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볼 수 있어야

성경에 나오는 ‘내 눈에 들보, 남의 눈에 티’라는 말은 모든 것을 남에 탓으로 돌리는 인간의 못된 속성을 지적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라는 말씀이다. 우리 사회가 어지간히 적폐청산이라는 말로 네 탓 타령을 했는지 되돌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사자성어 2위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선정됐다. ‘네가 한 국정농단은 적폐고 내가 한 것은 정의’라며 낯이 두껍고 수치를 모르는 철면피(鐵面皮)를 바로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단연 2021년의 인물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닐까. 그는 공직자로서 헌법을 사수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겁 없이 정권에 칼을 들이밀다가 대통령을 등에 업은 추미애에게 직무배제를 당하고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속수무책으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아직은 살아있는 법원의 구원을 받아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1위에 올라 당당하게 기사회생했다.

칼럼니스트 김대중은 ‘윤석열을 주목한다’라는 글에서 “윤석열 총장은 정직 2개월 징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법원에 신청하면서 소송 성격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소송이 맞다’라고 했다”라며 그의 배짱을 추켜세웠다. 또한 “이것은 잘못된 것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원칙’, 법치에 어긋난 것을 정치로 덮을 수 없다는 ‘원리’, 권력으로 불법을 호도하려는 권력 남용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정의감의 문제’라고 평하며 여기서 그의 ‘지도자 자질’을 본다”라고 평했다.

작가 이문열은 법원이 윤석열의 손을 들어 준 작년 크리스마스는 국민에게 기쁨의 선물이며 희망을 보여 줬다고 토로했다. 그는 “법원과 감사원이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라며 “이 정부에서 임명한 최재형 감사원장이 터뜨린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문제가 특히 컸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시국을 보고 걱정이 컸다며 정경심과 윤석열 법원판결을 보고, 오히려 희망을 보며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추미애 윤석열 갈등과 정경심 재판에서 법원의 딱 부러지는 판결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성숙하고 견고한 두께랄까, 지층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라면서 “청와대나 거대 여당이 마음먹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온 국민이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행시나 고시를 보고 고위 공직에 나간 공직자는 공복(公僕)으로서의 사명감으로 국가에 충성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바른길을 걸어가야 한다. 옳은 길을 가는, 맡은 바 사명에 충직한 공직자도 많이 있다고 본다. 불법한 상급자가 불의한 일을 시키면 목을 걸고 바른말을 하는 선순환의 공직 기풍이 진작되어야 나라가 산다.

권력에 바른말 할 수 있는 公僕

탈(脫)원전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등 여당 지도부에 당당히 항거하는 모습을 보여 몸 사리며 복지부동이 만연한 공직사회에 파장을 주었다. 이낙연 대표가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월성 원전에서 방사능 수소가 유출됐으며 이 사실을 은폐하는 데 ‘원전 마피아’가 관여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한 후 정재훈 사장은 “월성 원전에서 삼중수소가 유출되지 않았다”라며 “극소수의 환경운동가가 주장한 무책임한 내용”이라고 대응해 주목을 받았다.

공직사회가 올곧은 국가 충복으로 거듭나서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세계 1등 국가로서 무너진 안보를 튼튼히 하고, 망가진 경제를 다시 부흥시켜야 한다. 공산국가인 쿠바에서조차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 맞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우리 국회도 당리당략에 빠짐이 없이 잘못된 법률은 과감하게 수정하여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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