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봉의 대연출 도봉산(道峰山)

백절 황인두 

산 꾼은 계곡 따라 자운봉(紫雲峰)에 눈길 주나 
낙엽은 녹수 품에 안기어 흘러가고 
옛사람 고산앙지(高山仰止)의 새긴 뜻이 무언지
 
신선대(神仙臺) 때맞추어 대문을 열어 놓고 
세속에 지쳐버린 육신을 영접하니 
한평생 걱정거리가 일순간에 사라져
 
망월사(望月寺) 바위 병풍 천하의 명품이고
장엄한 산그리메 저 멀리서 달려온다
옛 스님 육두문자(肉頭文字)는 세월 속에 추억이네 
 
도봉의 세 명물은 불가침 신의 영역 
산정기 듬뿍 받아 영혼이 하늘 닿아 
마음은 도봉에 뺏겨 몸만 챙겨 내려가
 
소나무 잔설들이 바람에 맥 못 추고
산 꾼의 눈길들이 온기를 뽑아내니
어느덧 젖어 흐르는 여성봉(女性峰)이 그립다.

오묘한 우람한 몸 오형제 틀림없네
볼수록 위태로워 애간장 불태우나
세상사 덜도 더도 말고 오봉맘만 같아라

전설은 기어올라 소등에 올라타고
부처님 귀한 말씀 쇠귀에 경을 치나
우이암(牛耳岩) 절벽마다에 거친 숨결 매달려

도봉은 외로울 때 풀처럼 돌아눕다
시인은 괴로울 때 도봉을 찾아갔다
바람은 허공의 춤을 나부끼며 달려와

천혜의 천 길 벼랑 한 줄로 매달린 몸
머릿속 하얘지나 고통의 깊은 희열
험난한 와이계곡은 우리 삶의 축소판
 
소나무 바위 안고 바위는 세월 안고
자연의 천생연분 도봉은 보고 웃네
만월암(滿月庵) 약사여래도 덩달아서 옅은 미소

-.산에서 넘어지고 나면 자신을 볼 수 있다.

【도봉산 해설】
 
도봉산은 수도권에서 북한산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산이다.
암봉들이 만들어 내는 천상의 바위 병풍의 기세가 당당하다.
불가침의 신의 영역인 자운ㆍ만장ㆍ선인봉은 오봉과 함께 신들의 비밀정원을 인간들이 호기심에 오르고 있다.
 
1수ㅡ 도봉산역에서 내리자마자 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봉계곡을 따라 올라가는데 낙엽은 한량처럼 맑은 물을 유유히  흐르다가 고산앙지(高山仰止)새긴 바위에서 잠시 멈추었다 쉬어간다.
"고산앙지는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이고, 조선 숙종 때 곡운(谷雲) 김수증이 스승 조광조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서 새겼을 것이라고"안내판은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학문과 삶의 멘토를 모시고 학문에 정진하여 스승을 뛰어넘는 청출어람이 꿈일 것이다.
 
2수ㅡ 도봉산의 봉우리 중 신선대만 오를 수 있다.
때마침 신선이 대문을 활짝 열어 놓아 신선대에 올라 자운봉을 알현하니 세상 밑의 걱정거리가 일순간 사라진다.
신선대  하산 길에 산 꾼들이 버팀목으로 잡아서 광택이 난 나뭇가지한테 한마디 건넨다. “너 정말 고맙다!”
 
3수ㅡ 망월사 해우소에서 도봉산 주봉을 올려다보면 천하의 병풍바위가 펼쳐져 셔터 소리가 요란하다.
망월사에서 잠깐 치고 오르면 포대능선이 기다린다.
포대능선의 조망은 가히 천하의 일품이다.
산 너울이 달려가서 불암산, 수락산의 정상에서 놀고 있다.
신의 영역 도봉의 명물인 자운ㆍ만장ㆍ선인봉이 나란히 한 묶음으로 있어 산 꾼들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4수ㅡ 망월사의 영산전(靈山殿)배경의 풍광을 품고 내려오는 길에 스님의 요사채 앞마당에 걸려 있는 빨래들이 정겨웠다.
망월사에는 많은 스님이 계셨지만, 춘성스님이 촌철살인으로 내뱉는 육두문자가 지금까지 회자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도봉의 산정기를 듬뿍 받으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5수ㅡ 도봉의 여성봉은 사실화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한결 같이 감탄사로 "어쩜 어머 똑같다!" 한다.
겨울 산행에중 만난 여성봉은 더 관능미가 넘쳐난다.
바람에 맥 못 추고 소나무 잔설들이 휘날린다.
산 꾼들이 진한 눈길이 여성봉에 머무니 눈이 녹아 내려서 여성봉에 젖어 흐른다.
대사 없는 한 편의 영화 같다.
 
6수ㅡ 도봉의 오봉을 가까이에서 보면 볼수록 위태로워 보여 오금이 저리고 애간장만 태운다.
오봉을 우이령에서 보면 운치가 묻어나고 의좋은 형제처럼  보인다.
인간들도 덜도 더도 말고 오봉같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가을의 정취를 가장 느낄 수 있는 길이 우이령 길일  것이다.
 
우이령 길 / 백절 황인두 

우이령 어디에도 황소는 간데없고 
철쭉만 살랑살랑 꽃물결 출렁이니 
여인네 치맛바람에 꽃향기만 혼비백산 
 
산상의 구름 물결 산자락 휘어 감고 
석굴암 부처 말씀 가슴에 새겼으니 
오늘 밤 짙은 잠자리에 살갗 태울 생각 없네 
 
고결한 순결인가 쓰쳐간 정갈인가 
인간들 웃음 삼아 자연과 하나 되니 
대자연 무언의 경종 우이독경 어쩌지 
 
사랑을 가득 싣고 황톳길 걷노라면 
고통의 빛 잔치마다 고운 색깔 담아낸다 
물 오른 비경에 반해 옆사람도 잊었다.
 
7수ㅡ 우이암(牛耳岩)은 소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 것은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쇠귀에 경을 칠 것 같은 우이암은 거대한 직벽이라서 암벽 마니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다른 세상, 다른 느낌을 즐기고 있다.
8수ㅡ 도봉산에는 김수영 작품 "풀의 시비"가 있어 진정한 도(道)의 의미를 새길 수 있다.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억압의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자 자유를 외쳤던 김수영의 풀은 백성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작품이다.
바람도 허공의 춤을 맘껏 추듯 민초들도 자유의 억압에서 벗어나기를 시인은 간절히 바랐으리라!
 
9수ㅡ 도봉산에 왜 가느냐?
물으면 "고통의 희열을 느끼려고 한다."가 정답이다. 암봉들이 대연출하는 산이 도봉산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장비 없이 짜릿한 맛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천혜의 천길 벼랑을 자랑하는 와이계곡이다.
한 줄로 매달린 몸은 한순간도 방심은 금물이다.
험난한 와이계곡은 우리 삶의 축소판을 옮겨놓은 삶의 현장!
 
10수ㅡ 선선대에서 일망무제를 안고, 도봉의 산정기로 무장하고 다락능선따라 하산하다보면 작은 암자 만월암과 맞닥뜨린다.
세상에 이런 일이!
소나무가 큰 바위를 지탱하고 바위는 세월의 무게를 안고서 있네!
도봉산의 주봉 자운봉이 대견하다고 웃는 것 같았다.
만월암의 약사여래도 덩달아서 웃고 있으니 자연은 스스로 돕고 사는 것을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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