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민 기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선택이 아닌 당위이자 시대 소명이다. 물론 쉬운 길이 아니다. 지난한 일이다. 유명을 달리한 백기완 선생-. 그의 삶을 논할 때 파란만장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선생은 통일운동의 선구자로서 헌신해왔고, 학생·노동자·농민운동을 지도하며 재야 원로로 오랫동안 일해왔다. 아직 학생운동의 여파가 살아있던 기자의 대학생 시절, 선생은 남한이 부자나라가 됐다고 북한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통일은 통일이 아니라며 열변을 토했다. 당시만 해도 적지 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시위대 맨 앞에서 불의에 항거하며 구호를 외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선생은 또한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원작자이다. 돌이켜보건대 선생이야말로 노랫말처럼 앞서서 나가던 자로서 산 자여 따르라고 절규하지 않았나 싶다. 군사정권 시절 모진 고문으로 고생하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 기백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선생은 또한 우리말 살리기에도 공헌한 바가 크다. 지금은 익숙해진 ‘새내기’, ‘동아리’라는 말은 그가 만들어내기까진 신입생, 서클로 사용됐을 뿐이다. 좌우를 떠나 한국현대사에서 그가 남긴 족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생이라고 오류가 없고, 실수가 없었겠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가 짊어 졌던 역사의 무게를 감안 한다면 오히려 우리 사회가 그에게 지고 있는 빚에 숙연해져야 한다.

선생의 생애 가장 큰 업적은 뭐니 뭐니 해도 통일운동의 대중화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가졌던 직함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적극적으로 추진됐지만, 지금은 깊은 갈등의 골을 넘어서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경기도가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지난 9일 온라인으로 생중계 한 ‘개성 잇는 토크콘서트, 다시 희망으로’는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또한, 정부는 DMZ 평화지대화를 위한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이번 실태조사로 경기북부와 강원도에 걸쳐 있는 비무장지대 내 문화·자연유산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유엔의 이상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선생께서 평생 맞섰던 기득권의 벽, 두려움 없이 마주하겠다”라고 밝히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특히 “선생께서 작사하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처럼, 그리고 전 생애로 실천하셨던 것처럼, 앞서서 나가시는 임을 ‘산 자’로서 충실히 따르겠다”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DMZ의 41.5%가 경기도에 속해있는 만큼 경기도는 한반도 평화조성에 중요한 축이다. 생전에 백기완 선생이 꿈꾸던 한반도 평화가 어떻게 구현돼가는지 경기도를 주목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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