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과 현 정부 경제철학인 소득주도성장의 그늘이 짙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경제가 어렵다. 설상가상 기업 자율경영을 이중삼중 옭아매는 규제마저 더해지고 있다. 재계의 간곡한 호소를 외면한 채 작년 연말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기업규제 3법’으로 기업에 족쇄를 채우더니 연초엔 기업·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집단소송제법, 징벌적손해배상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참다못한 김용근 경총 부회장이 사퇴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전경련·중견기업연합회·벤처기업협회가 공동 실시한 ‘기업규제 강화에 대한 기업인 인식조사’ 결과 응답 기업 중 37.3%는 ‘국내고용 축소’, 27.2%는 ‘국내투자 축소’를 검토 중이며 21.8%는 ‘국내 사업장의 해외이전’을 고려한다고 했다.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국내 온라인쇼핑몰 쿠팡이 전격적으로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카드를 꺼내 충격을 주고 있다. 기업가치만 500억 달러(55조4000억 원)에 이른다. 미국 언론은 2014년 중국의 알리바바 이후 가장 큰 외국 기업공개(IPO)가 될 것으로 전망할 정도다.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고 있는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NYSE 직상장을 택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을 ‘패싱’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규제가 덜하고 경영권 보장이 확실한 NYSE를 선택함으로써 경영성과 및 전망에 대한 자신감도 표현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까다로운 국내 규제가 중요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쿠팡은 김 의장에게 일반 주식의 29배에 해당하는 차등의결권을 부여했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자가 경영권에 대한 위협 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로서 국내에는 도입이 안 됐다.

김 의장이 주식을 얼마나 보유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분 2%만 갖고 있어도 58%에 해당하는 주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차단하고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제도 및 다중대표소송제 등 기업을 옥죄는 규제들이 미국에는 없는 것도 직상장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독일 등은 다중대표소송제가 없다.
한데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우리나라의 유니콘 기업, 비대면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했다. 근본 문제를 외면한 ‘선택적 해석’이다. 국내 기업의 쾌거라지만 왜 뉴욕증시를 택했는지 묻게 된다.

문재인정부는 왜 유망 기업이 한국을 떠나는 지를 직시해야 한다. 정부·여당은 규제 3법 등을 과감하게 손질하고 투기자본에 맞설 수 있는 경영권 보장 장치를 서둘러 마련하길 당부한다. 그래야 국내 유망기업과 고급인력이 해외로 줄지어 나가는 ‘기업 엑소더스’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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