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식 논설위원

옛 속담에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한자로 하면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변덕이라는 말도 생기고 속을 모르겠다고 하는 의심도 생긴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선과 악을 구별하지는 못하기에 자라면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질서와 무질서가 혼재해 있는 세상에서 생존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생존본능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 명예, 금전, 유희 등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게 되는데 당연한 욕구이기도 하고 목표이기도 하다. 각자 유전적 형질이나 환경에 지배를 받아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

이것을 나는 앤트로피의 법칙에 비유하고 싶다. 물리학에서 앤트로피란 자연물질이 변형되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현상을 뜻한다. 쉽게 예를 들자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며,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이동하는 것 등인데 이 앤트로피는 증가만 있지 감소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이 앤트로피를 인간에게 주입해보면 인간에게는 모두 앤트로피가  있는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앤트로피라고 본다. 문제는 악한 앤트로피로 기울어지면 되면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즉 출세를 위한 비정상적인 방법의 사용, 끝도 없는 욕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이기심 등은 스스로 자제하고 좋은 방향으로 선회시킬 수 있음에도 스스로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  등 부정적 앤트로피는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예부터 인간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작용을 이용했다. 아주 옛날의 물레방아부터 지금의 댐까지 바로 생각하는 동물이면서 도구의 동물인 인간의 지혜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지혜를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동력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혜로만 상생할 수는 없다. 그 근원에 이타의 마음, 타인을 생각하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직하게 살 것, 노력으로 목표를 달성할 것,  나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등 도덕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그 당연한  앤트로피의 법칙을 착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도록 노력한다면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의 진정한 실천이 아닐까. 세상이 좋아야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비판과 고발에만 그쳐서는 안되고 실천으로 행해야 한다. 바르게 살려고 하는 마인드는 기본이다. 그 위에 미안해하고 고치려고 하고 안타까워하고 도우려고 하고 내 것을 내어주려고 하는 마음들이 회복되어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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