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수 논설위원

어제 심어놓은 묘목에 생명수와도 같은 비가 내립니다. 뿌연 먼지가 하루 종일 어지럽게 흩어져 봄날을 갈기갈기 찢어 놓아버렸습니다. 어디서부터 흘러오는 봄비인지 생명을 가진 모든 자연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부드러운 수액으로 대지의 혈관 깊숙이 그리고 끊임없이 파고듭니다.

비가 내리고 봄바람이 부는 것도 살아있는 우주의 힘이 있기 때문이듯 사람의 마음에 도는 봄바람도 인간이 죽지 않고 살아있기에 가능한 호흡일지도 모릅니다. 흐름의 변화, 거부할 수 없는 변화를 거치며 삶도 발전하고 스스로 강해지는 게 인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촛불정국 이후 사회적 비리와 원칙을 두고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기업비리로부터 입시비리, 그리고 공직사회의 부조리까지 벌집 쑤시듯 쑤셔놓은 수많은 문제는 있었지만 제대로 책임질 사람은 없었다는 환경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게 그 얼마나 허허롭고 심각한 일이던가요.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고리는 우리 인간에게 있습니다. 비리와 부정, 코로나 탓으로만 돌리기엔 너무나 긴 경제적인 불황까지,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작용이 있으면 그에 반하는 반작용이 있듯, 둘 중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는 현재의 정치권이 져야 할 책임 또한 크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식해야 할 때이기도 합니다.

​국가와 사회, 이 모두는 추상적 의미라고 합니다. 공무원, 기업인, 그리고 일반 대중 다수의 국민까지, 나 스스로 가진 의식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사회적인 변화와 발전적 가치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만 늘어져 있고 모든 잘못은 현재의 내가 아니라 과거 정권에서도 그래 왔다는 관행으로 돌리기엔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결국엔 LH 사태라는 상상 불가한 일을 바라보는 국민은 일하라고 선출한 그들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내 삶의 가치는 어디에 두고 있는가? 정녕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봄은 와 있는가?

이 땅의 모든 정치인이, 모든 공직자가 그들의 본분이 무언지를 깨닫는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정치인에게는 밥도 팔지 말고 커피도 주지 말고 인사도 건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선거철만 지나면 그들의 고개는 늘 빳빳했기 때문입니다. 국민 섬기는 정치인을 여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오는 계절입니다. 오늘 걸어온 이 하루의 행복했던 걸음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를 주는 시간인지 짙은 어둠을 타고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곰곰이 자신을 뒤돌아보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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