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권한 못잖은 의무. 지도층에 주어진 책무다. 책임을 저버리면 지도자로서의 권한은 민초에 해 거둬들여진다. ‘순자’가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인데,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한다.(王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고 경책한 바가 뒷받침한다.

시민들이 집권층 배 ‘반쯤 전복’

민의의 심판이 내려졌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4·7 재보궐 선거에서 제1야당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뒀다. 2016년 총선을 시작으로 17년 대선, 18년 동시지방선거, 20년 총선까지 네 차례 전국 규모의 선거에서 승리했던 더불어민주당에 유권자들이 이번에 등을 돌린 것은 지난해 총선을 통해 180석의 거대 여권을 만들어 줬음에도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국정 운영을 하고, 남 탓만 하는 행태에 신물 났기 때문이다. 25명의 서울 구청장 중 24명, 49명의 서울 국회의원 중 41명이 민주당 소속이지만 민주당 후보는 서울·부산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 나라의 주인인 유권자 시민들이 집권층의 배를 ‘반쯤 전복(顚覆)’시켜 버린 것이다. 왜? 집권층의 ‘내로남불’ 행태가 미웠다. 아파트 한 채가 절실한 국민을 투기세력으로 폄하하면서 자신들은 경제적 이익을 취한 여권 인사들의 이중성에 대한 회초리다. 게다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로 민심이 들끓는데도 ‘생태탕’ 네거티브에만 매달리는 여당 후보를 어느 누가 지지하겠는가.

장기적으로 보면 조국 전 법무장관, 윤미향 의원 사태 등에서 여당이 보여 준 공정 가치의 훼손 또한 이번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본다. 온갖 편법과 불법적 행태가 드러났는데도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한 민주당의 ‘선택적 공정’에 많은 국민이 분노한 것이다.

국민은 인사와 정책의 실패는 견디지만, 오만한 태도를 참아내긴 어렵다. 180석의 정부ㆍ여당이 ‘약자 코스프레’를 한다든지, 실패를 모두 적폐세력 탓으로 돌리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교정할 시간은 겨우 1년도 안 남았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무서운 민심을 엄중히 받아들여 정책을 전환하고, 인적 쇄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책무가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층의 자세가 민의 수렴을 위해 겸허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재보선과 관련해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이며, 더욱 낮은 자세로 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밝혔다”고 밝혔다. 실행을 기대해본다. 청와대를 향한 경고등은 이미 켜졌음을 인식해야 한다.

정관의 치(貞觀之治, 627~649년).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로 평가받는 당 태종의 집권시기는 국력이 번창하고 문화예술이 발달한 시기였다. ‘정관정요’(貞觀精要)는 후대의 사관인 오긍이 이 같은 태평성세를 그리워하며 당 태종과 신하들 간의 문답을 엮은 책이다.

직언을 요구하는 당 태종에게 신하들은 순자가 말한 이 구절을 인용해 답하면서 모름지기 군왕은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간언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비롯한 일본 위정자들의 머리맡에서도 떠나지 않았던 책이다.

두 귀·두 눈으로 민심 수렴하길

우리나라에서도 심지 깊은 선비들은 ‘정관정요’를 읽었다. 그리고 주군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예컨대 고려 충숙왕 무렵 문관으로서 사헌부 벼슬을 하면서 꼿꼿하게 산 황근은 “백성인 물이 임금인 배를 띄움을 알려거든 충심으로 ‘편안히 즐겁게 놀기에 눈먼 임금’에게 간해야 하는데, 사간원에서 경계하는 말을 드리지 못했으니 가의가 장사로 귀양 가듯 함을 불평할 게 없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물론 야권의 승리는 여권 실정에 따른 반사 이익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이 그동안 얼마나 체질개선에 성공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후보 단일화 외엔 이렇다 할 선거 전략도 없었다.  "국민의힘은 아직도 부족한 점 투성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직에서 물러나면서 한 말이다. 당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완승'을 이끌고도 경고장을 퇴임의 변으로 남긴 것이다. 특히 당이 이번 보궐선거 승리 의미를 착각한다면 내년 정권교체의 기회도 소멸될 것이라고 ‘따끔한 충고’를 주지 않았던가.

여·야 간 승패의 희비를 떠나 민심은 언제고 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언제 뒤바뀔지 모른다. 정치인들은 민심을 먹고 산다. 여야가 정치의 본령을 되새길 때다. 두 귀를 열고, 두 눈으로 직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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