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경택 총재

4·7 재·보궐선거에서 민심이 실체를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투표 전 여론조사 추세대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는 민심이 문재인 정권 4년을 심판한 결과다.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 후보는 큰 표 차로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2016년 총선 이후 전국단위 선거 4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다. 불과 1년 전 21대 총선에서 여당에 180석을 몰아줬던 민심의 대반전이었다. 이번 선거는 여당 소속 전임 시장들이 성추행 문제로 치러졌다. 그런데 여당은 선거 원인을 제공했을 경우 자당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당헌을 바꿔 후보를 냈다. 대국민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누적된 불만 표출…국정 쇄신 시급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표심은 크게 요동쳤다. 지난 4년간 부동산 대책을 20차례 넘게 쏟아내고서도 집값을 잡지 못한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의 누적된 불만이 불씨를 키웠다. 여당은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하며 읍소했지만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진 못했다. 부동산 정책의 총사령탑이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위선적 행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여당이 내곡동 생태탕 논란 등 네거티브 총공세를 폈지만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서울과 부산시장 보선 투표율은 56%를 넘겼다. 역내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재·보선 중 최고투표율을 기록했다. 야당 시장 임기는 1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국민은 정권심판의 한 표를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집권 세력이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민의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정부 여당은 1년 전 총선 압승에 취해 오만에 빠져들었다. 친문 강경지지층과 거대여당의 의석수만 믿고 설익은 정책들을 밀어붙이며 입법 폭주를 했다. 이런 독선에 민심이 등을 돌렸다. 이제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년간 국정 기조 전반을 점검하고 전면적인 인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 여당이 선거기간에 약속한 대로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야당 지도부는 물론 야당 시장들과도 머리를 맞대는 진정한 협치를 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서울에서 구청장과 시의회를 장악한 여당이 사사건건 야당 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4·7 재·보선 결과에 대해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더욱 낮은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다”라고 했다. “코로나 극복, 민생 안정, 부동산 부패 청산에 매진하겠다”라고도 했다. 서울 선거에서 민주당은 25개 구 전체에서 패했고, 여야 후보 득표율 차이도 18%포인트가 넘었다. 부산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모든 구에서 졌고, 여야 후보 차이는 무려 28%포인트가 넘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참패를 떠올리게 하는 수준이다. 문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이 대참패가 아파트값 폭등과 LH 땅 투기 의혹 때문에 벌어진 일시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큰 착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과 정의를 앞세우며 취임한 문 대통령은 앞장서 불공정과 불의를 보여줬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물러나며 “국민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로 착각하지 말라”고 했다. 또 “낡은 이념과 특정한 지역에 묶인 정당이 아니라 시대 변화를 읽고 국민 모두의 고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거듭해 달라”고 주문했다.

변하지 않는 여권 ‘남 탓’ 구태 여전

하지만 정부 여당은 쇄신과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홍 부총리는 “부동산 정책의 큰 틀은 흔들림 없이 유지돼야 한다. 주택 공급은 지자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동산 공약을 견제함과 동시에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다.

홍 부총리는 재·보선 전 사의를 표명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도하는 ‘2·4대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검찰·언론 등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곳을 탓하는 구태가 여전하다. 사퇴한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오세훈 시장의 내곡동 관련 의혹을 온전히 꼼꼼히 따졌어야 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부터 여야가 본격적인 쇄신과 혁신 경쟁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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