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명 군주라는 평가를 받는 정조는 당쟁이 아닌 ‘협치’를 강조했다. 바로 ‘포용력’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지가 위대한 까닭은 다름 아니라 포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싣지 않는 게 없기 때문이니, ‘무소불포 무소부재(無所不包 無所不載)’ 이 여덟 글자는 임금의 상(象)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민주주의는 원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대립적인 정파 간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런데 2021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실종됐다. 막말의 연속이다.

‘껍데기는 가라’고 다시 되뇌어 본다. 영국의 작가 T S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우리의 토종 시인 신동엽은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다. 희망 상실에 대한 절규다. 절망 목도다.

문제는 돈이다. 돈은 생활의 기본수단이기에 필요하다. 그러나 정재(淨財)가 있고 탁재(濁財)가 있다. 돈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하지만 촌지 수준이라도 검은돈을 가까이하면 악의 편에 서는 법이다. 2000년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지금껏 전문성과 도덕성을 두루 갖춘 후보가 많지 않다. 20년간 역대 정부마다 청와대 민정·인사 라인의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진 게 잘 보여준다. 대부분 후보가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병역면탈, 부적절한 부동산 및 주식 투자 등에 걸렸다.

이런 현실에서 서민 삶은 날로 팍팍해지고 있다. 절박한 상황들이 오늘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은 시 ‘구변(九變)’에서 “민심이 변하는 것은 의식주에서 비롯되고 의식주로 귀결된다. (…) 백성이 살고 국가가 승리하는 것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人情動變歸衣食 民生國勝無相?)”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면 공동체 존립을 위한 동력을 잃는 법이다. 이런 사회에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질시와 증오, 저항이 증폭된다. 오늘 61돌을 맞은 4·19혁명의 교훈을 되새길 때다.

그럼 위정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는 설파한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도 방법이 있으니, 그들이 원하는 바를 해주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민심은 돌아오게 된다(得其心 有道 所欲 與之聚之 所惡 勿施爾也 民歸也).”

봄날, 황무지를 뚫고 나오는 씨앗의 여린 순이 곱다. 민초의 맑은 마음 같다. 금세 드러날 정상배의 탁한 위선과 대비된다. 다시, 읊는다. 껍데기는 가라. 이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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