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민 기자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선거 하나가 국가를 뒤흔드는 거대 이벤트이다. 민주주의 국가치고 최고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소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할 만큼 무소불위인 데다가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가 만연해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는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권력의 핵심에 들어섰는데도 자유민주주의가 파괴됐다, 시장경제가 흔들린다는 말이 나온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회복이다. 문재인 정권하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신이 훼손되고 시장경제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그의 권력의지가 불타는 출정식이었지만 왠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은 무엇일까? 문재인 정권이 정말 자유민주주의를 저버리고 시장경제를 짓밟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변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잘한 것은 잘 했다고 못 한 것은 못 했다고 말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 집회의 결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탄핵을 당하고 조기 대선으로 탄생한 정권이 바로 문재인 정부이다. 어찌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집회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올렸을 뿐이다. 다시 말해 국민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 혁명의 열매를 민주당이 따먹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촛불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경제 위기를 극복했어야 한다.

하지만 배가 산으로 갔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이라 하여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비리를 척결한다며 수많은 사람을 감옥으로 보냈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고위층 인사치고 수사대상에 오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과거 행적을 들춰내 법의 심판대 앞에 세웠다. 혁명을 완수하는 데 어느 정도 과거 잘못된 비리와 관행을 바로 잡는 일은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혁명의 성패 여부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있지 지나간 세상을 심판하는 데 있지 않다. 어두움은 아무리 없애도 어두움이다. 어두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빛을 비추는 방법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한다며 기용한 사람이 바로 윤석열이다. 그는 문재인 정권에서 적폐청산으로 승승장구해 검찰총장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금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겠다며 대통령선거에 나선 것이다. 이것이 과연 윤석열의 권력욕이 빚은 참상인지 아니면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이란 얄팍한 역사의식으로 저지른 오판에 의한 희극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고 보면 역사는 돌고 돈다. 윤석열 대선 출마는 적폐청산이란 희극의 절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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