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란 다름 아닌 우리 일행이 타고 갈 비행편의 출발시간 문제였다.

분명히 밤 11시 30분(23시 30분) 출발 비행기라고 티켓에 적혀 있어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게이트 디지털 자막 전광판에는 한 시간이나 앞당겨진 밤 10시 30분으로 표시되어 안내되고 있었다.

에미레이트항공사의 두바이 행 비행기 출발시간을 한 시간이나 앞당겨 자막으로 내보냈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까지 극동아시아에서 두바이까지 직항으로 운항하는 비행노선이 없었는데, 바로 오늘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두바이 행 노선의 첫 취항 비행 편으로 탑승객을 미리 모아놓고 거창하게 기념행사(ceremony)를 실시하기 위해 한 시간을 앞당겨 자막을 내보냈던 것이다.

즉, 아랍에미레이트항공사(Emirates Air)와 일본항공사(JAL)의 첫 취항 비행기를 두 나라에서 출발시키는데, 바로 우리가 탑승하고 비행할 항공편이 간사이공항에서 출발하는 첫 비행기였다. 그래서 첫 탑승객을 모아놓고 취항행사를 하기 위하여 디지털 자막에 출발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내보냈던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개찰구 앞자리에 붉은 양탄자를 깔더니 양쪽 항공사 직원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했다. NHK 방송사 등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취재에 열중이었다.

우리는 첫 취항 승객이라는 점을 기념하기 위해 현수막 앞에 서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런데 간시이공항에 내렸을 때 우리 일행과는 달리 혼자 늦게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한국인 여성 승객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인천공항에서도 핸드백 속의 금속(손톱 깎기)이 검색대 X-Ray에 스캔되어 다음 스케줄 진행상 시간이 다소 지연되기도 했었다.

그래도 동행하는 일행이기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이 발동하여 서로 기다리는 미덕을 발휘하였는데, 그녀도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내 카메라로 한 커트 찍어주었다. 그녀는 이란과 카펫트(carpet, 양탄자) 관련 무역업을 하는 40대 초반의 여성으로 S무역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이었다.

그녀는 전화통화를 페르시아어로 매우 잘 구사했는데, 그 모습이 무척 부러워 보였다.

그녀는 비즈니스 차 이란을 방문하기 위해 우리와 같이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 두바이(Dubai)공항까지 동행하는 여정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어느 자매 같이 보이는 두 여인이 자신들도 기념사진을 촬영해달라고 해서그녀들도 내 카메라로 찍어주고, 주소를 받아 적은 다음 귀국해서 보내주기로 했다.

참고로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를 사용하지만 당시는 불과 20년 전인데도 필름사진이 주종을 이루었고, 디지털 캠코더도 있었지만 화질이 매우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녀들도 이란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알고 보니 자매가 아닌 모녀관계였다.

내가 자매 같아 보인다고 말했더니 딸이 갑자기 “그럼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요?”라고 말하면서 농담조로 항변했다.

“그게 아니라 어머니께서 너무 젊어 보인다.”고 말해 주고 위기를 모면했다.

눈으로 읽혀진 대로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한 것이 상대가 느끼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하여 주는 아주 짧은 순간의 위기였다.

그랬더니 자기 딸이 이제 갓 서른 살로 H사의 과장이라면서 명함을 건네주며, 어디 좋은 남자 있으면 중매를 서달라고 청했다. 이 자리에서 나도 K기술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일본항공사(JAL)와 에미레이트항공사 관계자들이 연사로 나와 한참동안 축사를 하는 등 기념행사를 모두 마치고 개찰에 들어갔다.

개찰구에서 양쪽 항공사는 우리가 첫 취항 승객이라면서 기념품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기념품이 정말 쓸모없고, 볼품도 없는 것들이었다.

일본항공사에서는 여행가방(luggage)에 붙이는 명찰(tag)을 주고, 에미레이트항공사에서는 보석함 같은 기념품을 주었지만 조잡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에미레이트항공사 측에서 첫 취항 탑승객이라는 확인증(certificate)을 개인별로 주었지만 이것을 언제 어떤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수 있을지는 전혀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 7회에 계속 -

 박정봉 칼럼니스트
(전)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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