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공기업) 종사자들의 ‘한심한’ 현실인식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기관에 대한 군살빼기는 국민적 상식이다. 600조원에 가까운 공공기관 부채를 방치하면 국가 재정이 파탄 나고 말 것이란 위기감이 제기된 지 오래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1년 말 공공 기관 350곳 부채는 583조원이나 된다. 관련 통계를 공시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최대다. 올해 정부예산 607조원에 맞먹는다. 부채는 문재인정부의 코로나19 대응과 부동산 대책, 한국판 뉴딜 등 공공사업을 진행하고 투자를 늘리면서 2017년부터 4년 연속 증가했다. 근본적으로는 소득주도성장 등 공공주도 정책과 일자리가 크게 늘면서, 공공기관에 대한 출연·출자·보조금 등의 합계인 정부 순지원액 증가 영향이 크다. 공공기관이 세금에 의지해 연명했다는 뜻이다.

공공기관 부채가 과도하기에 개혁이 절실한 것이다. 윤석열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한 ‘빅 배스(Big Bath)’를 단행해야 할 이유이다. 빅 배스는 묵은 때를 모두 벗겨내는 ‘큰 목욕’을 의미하며, 새로 취임한 책임자가 전임자 시절 쌓인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낸다는 뜻이다.

부채는 583조원 올해 정부예산 607조원 육박

조세재정연 조사, “심각하다” 응답 26% 불과

윤석열 대통령은 “공기업이 과하게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고강도 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일부 공공기관의 건물과 사무실의 호화로움을 지적하고 건물 매각 및 임원진 연봉 삭감을 지시해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공공기관 구조 개혁이 기대되고 있다. 이처럼 방만한 경영과 조직 비대화, 생산성 저하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공공기관에 언제까지 국민 혈세를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개혁은 정부와 공공기관의 공동 과제다. 그래야 효율적 개혁이 담보된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조세재정연구원의 ‘공공기관 정책 인식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일반 국민과 전문가 모두에서 6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난 데 비해 공공기관 종사자 중에서는 심각하다는 응답이 26.2%에 불과해 큰 온도 차를 보였다.

주목되는 바는 일반 국민의 59.9%, 전문가 62.9%는 공공기관 호봉제가 문제라고 답했다. 반면 공공기관 종사자는 73.9%가 호봉제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공공기관 평균 보수가 높다는 응답은 일반 국민 61.0%, 전문가 64.9%였고, 종사자들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과도한 부채 의식을 하지 않고, 때 되면 호봉이 오르는 무사안일주의에 함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공기관의 빚은 정부가 보증을 선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숨겨진 나랏빚’으로 불린다.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공공기관의 군살을 확 빼지 않으면 나라 살림은 결딴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과도한 부채가 초래하는 국민의 세금 부담과 국가재정 악화를 직시해 공공기관 개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길 촉구한다. 정부는 공공기관 인력과 경영에서 고삐를 조이며 효율화에 나서야 한다. 공공기관과 민간이 경합하는 업무는 조정하고 민간에 위탁하는 방안도 검토하길 바란다.

물론 공공기관 개혁은 합리적 경영평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각 기관 고유 업무의 공공성을 높이고 대국민 서비스 및 조직운영 혁신, 일자리 중심 경제 선도, 혁신성장 뒷받침, 공정경제 기반 구축, 윤리경영 강화, 산업 안전 등을 주요 과제로 지정해 공공기관이 정부의 정책방향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한 발 앞서 구현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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